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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기옥<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
오랜만에 집에 온 아들이 가방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꺼내 놓는다. 쥐눈이콩이다.
영감님이 뇌출혈로 마당에서 쓰러져 119로 싣고 온 80대의 보호자가, 엊그제 할아버지를 중환자실에서 병실로 옮겨 한숨 돌렸다면서 가지고 온 것이라 한다.
할머니는 주치의인 아들에게 한참을 망설인 끝에 검은 비닐봉지를 내어놓으며,
"젊은 의사 선생님도 이런 거 좋아할라나 모르겠네. 쥐눈이콩이라고 ~."
아들이 얼른 두 손으로 받으며,
"좋아합니다, 할머니. 우리 어머니가 특히나 좋아한답니다."
"양주나 넥타이를 선물한다던데."
"아닙니다. 고맙습니다."
아들이 샤워를 하는 동안 콩을 얼른 씻어서 냄비에 안쳤다. 콩은 햇빛을 머금고 야무지게 잘 건조되어 있었다. 콩이 삶기는 동안 커피를 한 잔 마셨다. 뇌출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생각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할머니가 손주뻘 되는 젊은 의사에게 머뭇거리며 쥐눈이콩을 건네는 모습을 떠올렸다. 허리를 굽혀 두 손으로 콩을 받는 아들의 모습에 내 마음이 좋았다.
콩이 적당히 삶기자 불을 낮추어 간장으로 졸이기 시작했다. 반지르르 윤이 나게 올리고당도 조금 부었다. 콩졸임의 포인트는 '쪼글쪼글'이다. 쥐눈이콩이 간장에 졸아 쪼글쪼글, 짭쪼름하게 완성되었다.
저녁상을 마주한 아들이 젓가락을 콩졸임으로 가져간다. 한 개를 집는다. 떨어뜨린다.
"작긴 작네요."
"쥐눈이콩이라 ~."
우리는 마주 웃고 숟가락으로 떠먹기로 한다. 잡채도 있었고, 굴비도 있었지만, 콩졸임에 손이 더 많이 갔다.
삶에서 마주한 안도와 고마움이 짭쪼름한 콩졸임이 되어 입안으로 들어갔다. 박기옥<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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