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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민〈트래덜반 대표·안무가〉 |
인도양의 일몰을 내 눈으로 직접 보겠다는 집념으로 스리랑카 남부로 향했다.
출입문과 창문을 활짝 열고 산길을 내달리는 버스는 엉덩이가 질펀해지다 못해 네모 모양이 될 것 같은 승차감을 선사했다. 무계획 여행자는 늘 그렇듯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야 숙소를 물색한다. 신축임에도 가성비가 좋고 중심가에서 떨어져 있어 조용한 곳, 가끔 숙소 뒤편 정글에서 공작새와 원숭이, 자라 등이 숙소로 찾아온다는 투숙객들의 리뷰에 고민할 필요 없이 예약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찾은 숙소에서 "Nobody there(거기 아무도 없어요)?"라는 필자의 외침에 난데없는 한국말 "안녕하세요"가 되돌아와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부엌에서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걸어 나오는 암마(싱할라어:엄마). 뒤따르는 며느리 카비샤가 재빠르게 연결한 수화기 너머에서 "안녕하세요! 한국 어디에 살아요?"라고 묻는, 경주에서 근무 중인 엄마의 둘째 아들 수란가.
한국과 인연이 깊은 가족들이었다. 한국에서 땀 흘려 번 돈으로 이 숙소를 개업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숙소 개업 이래 첫 한국인 게스트가 되어 따뜻한 환대를 받게 되었다. 그곳에서 지내는 내내 필자는 그녀를 엄마라고 불렀다.
1. 빛바랜 노트
알고 보니 90년대에 한국 이주 노동자였던 엄마. 한국경제가 휘청하던 1999년, IMF의 타격으로 스리랑카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필자는 엄마가 스리랑카로 돌아온 이후 처음 만난 한국인이었다. 공장 주소, 한국 동료들의 이름, 연락처가 빼곡히 적힌 빛바랜 노트 그리고 미스터 강 공장장님이 운영하는 엄마의 일터 이야기. 한국은 엄마의 기억 속에서 너무나 또렷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2. 내 생애 첫 김장
가장 그리운 한국 음식이 김치라고 하는 엄마. 스리랑카로 돌아온 이후 한 번도 못 드셨단다. 마침 새우젓을 제외한 재료들이 집에 다 있네? 오케이. "엄마, 내일 나랑 김치 만들어요. 내가 만들어 줄게요!" 그렇게 생강 향과 마늘 향이 폭폭 풍기는 매콤한 내 생애 첫 김치를 담갔다.
3. 드라마 '지워지지 않을 그 연둣빛(1998)'
엄마가 '한국 드라마 연두씨'를 재차 이야기하셔서 검색해 보니 필자도 모르는 그 시절 드라마를 기억하고 계셨던 것. 배우 최강희가 극 중 연두 역할로 출연하는 98년도 드라마가 있더라. 엄마는 앉은 자리에서 60분짜리 '연두씨 드라마'를 정주행했다.
4. 눈물과 애환의 노래
엄마가 이 노래를 아냐며 불러주신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리랑을 부르는 그녀 얼굴의 고랑 깊은 주름살에는 필자가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의 풍파 그리고 한국에 대한 향수가 담겨있었다.
이선민〈트래덜반 대표·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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