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혁동 시인·대구문인협회 부회장 |
탐욕의 소용돌이가 창궐하던 혼돈과 혼란의 흑암 속에서도 때가 차니 새해의 동이 트고 해가 솟았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 때만 해도 핏빛 절규는 어두운 하늘을 붉게 물들였지만 이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그라들고 하늘은 다시 환하게 밝아왔다. 사람들도 지난날의 죄악을 망각이나 하려는 듯, 굳이 해가 언제 어떻게 졌는지 왜 다시 뜨는지, 해가 뜨고 지는 이유를 애당초 알 필요도, 생각해 볼 의사도 없었고, 누구에게 구하는지는 모르지만, 오직 저마다의 새해 새 소망만을 간구하는 새해 아침이다.
새해! 새로운 태양이 떠올라 새해인가? 아니면 새로운 연도가 시작되어 새해인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새로운 태양이 떠올랐으니 습관이 잉태한 관념을 좇아 이미 진 태양 아래서 범한 모든 죄와 허물은 지는 해와 함께 태워버리고 스스로 면죄부를 받은 양 자신을 기만하며 다시 복만 기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해마다 그러하듯이 다사다난했던 2024년이 저물고 2025년 새해가 밝았으니 날짜 변경선 같은 이 시점에서 지나온 다리를 불태우고 지난해의 잘못을 다시는 돌아보지 말자는 자기만의 결단으로 지난해에 지은 죄의 삯을 은근슬쩍 지우고 오직 올 한 해의 축복만을 소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눈을 감고 잠시만 생각해 봐도 새로운 해란 없다. 어제 지고 오늘 뜬 해나 오늘 지고 내일 뜰 해는 모두 태초에 창조된 그 날의 그 해 하나뿐이다. 그 해가 지금까지 날과 해를 이루어 오지 않았는가? 다만, 해보다 늦게 창조된 사람들이 신이 준 자유의지 안에서 끊임없이 샘솟는 탐욕으로 새로운 태양을 만들고 새로운 우상을 만들어 복을 빌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복을 비는 습성을 가진 인간들이 새로운 연도가 시작되는 새해 벽두를 기복의 적기로 생각하는 것은 날짜 변경선이라는 관점에서는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난해에 범한 죄과에 대한 자생적 참회의 눈물도 없이 탐욕만 앞세운 기복의 노예로 누구에겐가 복을 빈다면 무늬만 새해이지 실상은 새해가 아닌 헌 해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새해를 맞으려면 먼저 무릎부터 꿇고 우리의 탐욕이 빚어낸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에 대하여 각자의 심령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자성과 자복의 참회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스스로가 축복의 통로가 되어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는 축복의 꽃길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환하게 펼쳐지는 복된 새해가 되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린다.
여혁동 시인·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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