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네모' 같은 형용모순
"2시간짜리 내란 있느냐"고?
謀議시간 왜 산입 안 하나
계엄·탄핵 혼돈 속 궤변 난무
정파적이며 법치를 형해화
논설위원 |
'둥근 네모'를 본 적이 있는가. 물론 실존하진 않는다. 하지만 우린 더러 '둥근 네모'란 말을 쓴다. 일종의 수사법(修辭法)이다. 의미상 양립할 수 없는 낱말을 함께 사용하는 어법, 즉 형용모순이다. 이를테면 '소리 없는 아우성' '민주적인 독재자' 따위다. 영어 oxymoron으로 표기되는 형용모순은 '똑똑한 저능아'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셰익스피어도 형용모순을 즐겨 썼다. 그의 문학작품엔 '슬픈 웃음' '미운 사랑' 같은 형용모순의 언어가 자주 등장한다.
형용모순의 어법을 터득한 건가. 윤석열 대통령 변호인단이 헌재 심리 변론에서 12·3 내란을 "평화적 계엄"이라고 윤색했다. 평화적 계엄? '평화적 전쟁'이란 말과 비슷한 궤변이다. 헌법 77조 1항에 명시됐듯 계엄은 전시·사변이나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때의 비상조치다. 민주당의 탄핵 몽니와 여야 대치로 정국이 어수선했으나, 12·3 계엄 이전의 대한민국은 평화로웠다. 그런데 느닷없이 비상계엄 선포? '평화적 계엄'이 아니라 '평화를 짓밟은 계엄'이라는 게 더 적확한 표현이다. 유리창을 깨고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계엄군의 폭력은 어떻게 변명할 건가. 비상계엄이 촉발한 정국 혼돈, 국격 추락, 경제 하강, 국민 분열, 법원 습격이 평화로운 장면들인가.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 윤 대통령이 계엄을 정당화하며 내놓은 항변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싸한데 간과한 게 있다. 모의(謀議) 시간을 뺀 것이다. 검찰 수사 결과, 12·3 내란 훨씬 이전부터 여러 차례 계엄 모의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내란이든 쿠데타든 실행의 시간은 짧고 모의의 시간은 길다. 왜 역모(逆謀)라고 할까. 왕조시대엔 반역 모의만 해도 삼족을 멸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체포되기 직전 SNS에 올린 육필 원고에서 "계엄은 범죄가 아니다. 국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통령의 권한 행사"라고 했다. 계엄선포권은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긴 하다. 하지만 12·3 내란은 헌법과 계엄법을 위배한 위헌적·불법적 계엄이다. 그러니 범죄가 맞다. "계엄은 고도의 통치행위"라는 주장은 윤 대통령 측의 핵심 방어기제다. 그러나 준법한 계엄만 통치행위에 속한다. 위헌적·위법적 계엄까지 면죄되진 않는다. 불법적 계엄은 '고도의 범죄행위'다.
법원이 윤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하자 석동현 변호사는 "반헌법·반법치주의의 극치"라며 "국민들에게 국가적 비상위기의 실상을 알리고자 한 비상계엄 선포 행위는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사법적 평가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은 헌법 이론의 기본"이라고 강변했다. 말인즉슨 '법 위의 대통령'이란 뜻인데 지나치게 자의적인 법 해석이다. 민주공화정에서 '치외법권'적 권력은 없다.
궤변은 고대 그리스 소피스트(sophist)에서 유래한다. 소피스트는 BC 5세기에서 BC 4세기에 걸쳐 아테네에서 변론술과 지식을 가르친 인물들이다. 그러나 후일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이 소피스트가 가르친 건 지혜가 아니라 말하는 기술에 불과했다고 혹평하며 평가가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예나 지금이나 궤변가들은 사유(思惟)의 규칙을 벗어나는 논리를 직조해 자기 주장에 맞는 결론을 도출한다.
계엄과 탄핵의 혼돈 속에서 우리는 해괴한 궤변을 목도한다. 궤변은 대개 정파적이고 정략적이며 선동적이다. 때론 법치를 형해화 한다. 궤변을 판별해낼 국민의 문해력이 더 중요해졌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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