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50123010003088

영남일보TV

이십 대의 터널을 통과하는 청춘에게 보내는 안도현 시인의 편지

2025-01-23

[끊어진 자산증식 다리…대구 청년의 짐] (4 끝)

이십 대의 터널을 통과하는 청춘에게 보내는 안도현 시인의 편지
안도현 시인
이십 대의 터널을 통과하는 청춘에게
내가 대학 다닐 때는 말이야, 연탄을 때는 자취방에 살았는데 말이야, 쌀이 떨어지면 친구에게 봉투를 들고 빌리러 갈 때도 있었는데 말이야…. '나 때는 말이야'와 같은 꼰대들의 말이 식상해서 너희는 '라떼는 말이야'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잖아. 나는 젊은 세대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말들을 만날 때마다 감탄하곤 하지. 여태 아무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말의 유희에 기가 죽는 게 사실이야.

기존의 틀에 박힌 형식을 거부하고 실험적인 모험을 감행하는 경향을 예술에서는 아방가르드라고 해. 지금 한국의 이십 대가 바로 그 아방가르드적인 삶의 태도가 체화된 세대라고 생각해. 너희는 몸에 익숙해지면 다시 그 익숙함을 던져버리고 또 다른 세계로 건너가잖아. 한 톨의 두려움도 없이 말이야. 물론 현금카드의 잔액은 늘 밑바닥이고 앞날은 불투명해서 답답하고 불안하다는 것도 알아.

작년 여름 프랑스 파리 올림픽의 개회식을 기억하니? 각국 선수단이 배를 타고 센강으로 입장하는 장면은 정말 유례가 없는 사건이었어. 그동안 120년이 조금 넘는 올림픽 역사는 메인스타디움으로 국기를 앞세우고 줄 맞춰 입장하는 장면을 매번 되풀이했지. 마흔두 살의 연출가 토미 졸리는 그게 지겨웠던 거야. 그는 기존의 관습을 반복하는 일을 뒤엎는 연출을 선보였고, 그 결과 그에게 적지 않은 비난도 쏟아졌다고 해. 틀에 박힌 형식이 안정적이라고 판단한 꼰대들이 그에게 손가락질했을 거야. 꼰대들은 도무지 대화가 안 된다니까.

그리고 작년 연말에 전국의 농민들이 트랙터를 끌고 서울에서 열리는 집회에 가려다가 남태령에서 경찰에 막힌 적이 있었지. 고갯길에서 멈춘 농민들을 응원하려고 몇만 명의 젊은이들이 그리로 몰려갔지. 그 덕분에 그 다음 날 결국 경찰은 길을 열었잖아. 내가 아는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지인 두 사람도 거기 있었어. 평생 농민운동을 한 그들이 이렇게 말하더라.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걸 남태령에서 깨달았어요. 세상의 주인은 젊은 세대라는 뜻이었어.

시를 강의하는 학교 강의실에서 내가 첫 시간에 했던 말이 뭔지를 아니? 나는 시를 잘 모릅니다. 내가 알고 있던 시는 지금 여러분에게 시가 아니라는 걸 압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에게 새로운 시를 배우려고 이 강의실에 들어왔으니 이번 학기에 나를 좀 가르쳐 주세요. 학생들에게 주눅이 들어 했던 말이 아니야. 학생들의 언어를 배우고 이해해야만 그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지. 내가 이십 대 때 그렇게 무너뜨리고 싶었던 기성세대가 바로 오늘날의 나라는 사실, 조금 슬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어.

장 그르니에는 <섬>에서 이렇게 썼지.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이 문장을 응원 삼아 너희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나아가고 어떤 두려움도 없이 사랑해 보렴. 미래는 누구에게나 불투명한 법이야. 너희가 원하는 미래에 도달했다고 생각해 봐. 그 앞에 또 놓인 미래가 투명하게 실체를 바로 드러내지는 않을 거야. 불투명한 대상을 투명하게 바꿔 보려고 애쓰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누군가에게 '심쿵'을 느끼고 정성을 다해 만남을 지속하고 잘 보이지 않는 미래를 상상하고 같이 설계하는 동안 사랑은 익어가지. 사랑이 어느 날 문득 홍시처럼 입안에 떨어지는 일은 없잖아. 고뇌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동안 사랑은 점점 구체적인 실체를 갖게 되는 거지.

젊은 세대가 문제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 그러니 불확실함과 두려움마저 재산으로 삼고 나아가기를 바라. 현재의 결핍은 내일의 완전체를 위한 과정일 뿐이야. 고여 있지 말고 출렁거려야 해. 깨뜨리고 혁신할 수 있어야 청춘이지. 가슴은 뜨겁게, 정신은 차갑게 하고 말이야. 너희가 반드시 이길 거야.
-시인 안도현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경제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부동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