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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진 (법무법인 세영 변호사) |
겨우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잠들어 있던 자전거를 깨워, 타이어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가벼운 나들이에 나섰다. 신천에서 금호강으로 이어지는 자전거길은 봄의 기운을 온몸으로 실감하게 해주는 가장 확실한 길인 듯하다.
신천 둔치는 이맘때가 화사하다. 벚나무들이 길을 따라 줄지어 제각기 분홍빛 자태를 드러낸다. 바람이 살짝만 스쳐도 꽃잎이 흩날려 어느새 꽃비 속을 달리는 자전거길이 된다. 속도를 살짝 줄이고 페달을 천천히 밟아보는데 눈앞에 아른거리는 그 짧은 순간을 누리고 싶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신천 둔치에서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따스한 봄 햇살을 받으며 강아지와 산책을 나온 이들,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커플, 마주 앉아 바둑에 열중하는 사람들. 봄이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흐른다. 그 풍경 속에서 나 또한 그들의 일부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신천을 따라 북쪽으로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풍경이 달라진다. 침산교를 지나 아양교 방향으로 향하면 금호강가의 야생적인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 갈대가 흔들리고, 강 건너 숲에서는 이름 모를 새소리가 들려온다. 자전거도로를 벗어나 풀숲을 달려도 될 것 같은 자유로운 기분이 든다. 강물은 느긋하게 흐르고, 강줄기와 나란히 놓인 자전거길은 마치 자연과 대화를 주고받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신천에서는 꽃향기가 섞인 바람이 살며시 볼을 스쳤다면, 금호강변은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이곳은 한결 더 투박한 느낌이 들지만 강물 위로 반짝이는 윤슬이 눈부시다. 정돈되지 않은 풍경이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잠시 쉬기 좋은 곳에 자전거를 세우고, 물 한 모금을 마신다. 바람에 실려 온 강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봄은 결코 벚꽃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이런 조용한 순간에도 분명히 존재한다. 살짝 땀이 날 만큼 움직인 뒤에 찾아오는 고요함, 이것이 정녕 봄이 아닐는지.
돌아오는 길에 다시 신천을 지나며, 또 한번 꽃잎을 마주한다. 머잖아 벚꽃은 지겠지만, 이 길을 따라 달렸던 기억은 내 머릿속에 환상처럼 남을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마주한 봄날의 강, 그것은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무를 것이다.
이정진 <법무법인 세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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