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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문제일 칼럼

2025-05-11 17:57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미술관

어릴 적, 삼촌들로부터 박물관에서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무르면 전시된 밀랍인형이 살아나 잡아간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듣곤 했습니다. 지금이야 터무니없는 거짓말임을 알지만, 그때는 박물관의 밀랍인형이 정말 눈동자를 움직이며 쳐다보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혀 울면서 삼촌에게 달려가곤 했습니다. 향기박사만 이러한 공포를 경험한 줄 알았는데, 훗날 조카들을 데리고 극장에서 본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에서 밤이 되면 자연사 박물관의 전시물들이 살아 움직여 야간 경비원을 괴롭히는 장면을 보면서 그 공포가 만국 공통의 감정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방문한 미술관에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공포가 아닌 경이로움이었습니다. 미술관 지하 전시관에서 진행 중인 “흐름"이란 전시였는데, 이는 미술관 소장품을 현대적인 디지털 기술, 특히 실감 영상 기술을 활용해 보여주는 아주 특별한 전시였습니다.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을 넘어, 관람객들이 작품 속으로 깊이 몰입해 생생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획된 전시였죠. 전시관을 둘러싼 반원형 대형 스크린과 몰입형 영상, 그리고 풍부한 음향 효과는 관람객들을 마치 그림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실감 나는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의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선율이 흐르기 시작하며 영상이 펼쳐졌고, 곧 음악이 절정으로 치닫고 음향이 웅장하게 커지면서 거대한 화면에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의 격렬한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그 순간, 향기박사는 마치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 거친 파도에 휘둘리는 듯한 강렬한 경험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즐겨 듣던 말러의 아다지에토였지만, 그날 전시에서 들으니, 마치 처음 듣는 음악처럼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전시실 내에 설치된 디자이너의 작품 '자리' 덕분에 이리저리 옮겨가며 아다지에토와 영상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같은 음악과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많이 보였는데, 지루해하는 기색 없이 전시에 완전히 몰입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토록 완벽한 전시였지만, 향기박사는 1%의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그 부족함에 대한 해답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 심리학과의 Jay Gottfried 교수에게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당장 바닷물 냄새를 맡을 수 있다면, 우리는 세계를 훨씬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한 시각과 청각의 향연에 후각이 초대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 뇌는 시각, 후각, 청각 등 다양한 감각 정보를 동시에 받아들여 통합적으로 처리합니다. 미술관 전시에서 향기박사가 경험한 파도라는 시각 정보와 웅장하게 연주된 아다지에토라는 청각 정보에는 바닷물 냄새라는 후각 정보가 빠져 있었기에, 완벽하게 현실처럼 몰입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만약 파도가 쏟아지는 영상에 실제 바닷물 냄새가 더해진다면, 우리 뇌는 이 모든 정보를 융합해 더욱 생생한 '폭풍우 치는 바다' 장면을 만들어낼 것이고, 이는 몰입도 증가로 이어질 것입니다.

실제로 최근 영화나 비디오와 같은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즐길 때 시각과 청각뿐만 아니라 후각을 활용해 몰입감을 높이려는 시도가 늘고 있습니다. 영화 속 꽃밭 장면에서 꽃향기를 함께 제공하거나, 폭발 장면에 화약 냄새를 제공하는 방식이 그 예입니다. 향기박사 연구실에서는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 후각을 함께 자극하면 뇌가 다르게 느끼는지 알아보기 위한 연구를 수행했고, 그 연구 결과를 2024년 Experimental Neurobiology에 발표했습니다, 향기박사 연구진은 꽃향기와 커피 향을 해당 영상과 함께 제시하고 뇌파(EEG)와 설문조사를 실시해 과연 멀티미디어 경험에서 후각 자극이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는데, 영상 내용과 일치하는 향기는 일치하지 않는 향기보다 특정 뇌파(델타파, 세타파)를 더 강하게 활성화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특히, 세타파는 후각 정보 처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앞으로 더욱 풍부하고 몰입감 있는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가정의 달인 5월의 주말, 자녀들과 함께 실감 영상 기술을 통해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특별한 미술관에서 우리나라 명작들을 더욱 생생하게 감상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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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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