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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시론] 경북대가 서울대가 된다면

2025-08-07 07:10

한때 경북대는 한강 이남 최고의 대학이었다. 열 명 중 두세 명이 대학에 진학하던 시절, 서울살이가 부담스러운 지역의 수재들은 주저하지 않고 경북대를 선택했다.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 고등학생들에겐 주기율표처럼 익숙하다는 대학 서열표에 경북대는 없다. 요즘 고등학생 대부분은 서울에 있는 '서울대'와 서울에서 약간 떨어진 '서울약대', 서울에서 상당히 떨어진 '서울상대'로 진학하길 희망한다.


도시는 대학을 닮는다. 서울, 부산에 이은 대한민국 3대 도시 대구는 옛말이다. 인구 규모는 인천에 밀려난 지 오래고, 1인당 GDP는 전국 꼴찌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경북대와 대구는 나란히 그리고 조용히 추락하고 있다. 서울대급 재정과 자율성의 투입으로 경북대를 서울대로 만들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이 반가운 것도 이런 현실 때문이다. 교육의 힘으로 지역 혁신을 이끌고 국가 균형 발전을 실현하겠다는 이 혁신적이고 매력적인 구상은 성공할 수 있을까.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현재 서울대의 30% 수준에 그치는 지역거점국립대의 학생 1인당 교육비를 평균 약 3천억원, 연간 약 3조원씩 투자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경북대의 경쟁력을 높여 대구를 살리겠다는 선의는 대학생들이 졸업과 동시에 서울행 KTX에 몸을 싣는 현실 앞에선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수준의 인재를 길러도 그 인재들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살지 않는다면 기껏해야 고급 인재 양성소 역할에 그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 불균형이나 수도권 과밀화, 서열화된 입시 체제처럼 복잡하고 뿌리 깊은 문제를 전적으로 '대학'의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구호의 관점이 '대학'에만 머물러선 안 되는 이유다.


스탠퍼드대학이 실리콘밸리를 탄생시킨 것처럼, 새롭게 만들어질 10개의 서울대에서 10개의 실리콘밸리가 만들어지려면 대학의 성장이 도시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 즉 대학 중심의 도시 혁신이 필요하다. 대학의 성공이 지역 산업의 발전을 견인하고 일자리 인프라와 정주 환경이 완성되는 과정이 유기적으로 이어져야 경북대를 서울대로 만들겠다는 정책은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


과감한 대학 혁신과 대기업과 공기업 본사와 금융허브의 지역 이전, 교통·의료·문화 인프라의 획기적 확충, 창업 및 투자에 대한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같은 대한민국의 공간 전체를 재설계하는 수준의 종합 계획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더불어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정권의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 백년대계가 되어야 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앞으로 수십 년간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장기 프로젝트다. 5년 단임의 정치 구조 속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지역 간 유치 경쟁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표류해 온 공공기관 지역 이전사업에서 우리는 그 한계를 절실하게 경험했다. 칼텍이 세계적인 명문대가 되기까지 10년이 걸렸고 스탠퍼드는 25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절대적 축적의 시간과 일관된 국정 철학, 이를 뒷받침할 초당적인 합의가 필요하다. 그럴 때라야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인구 감소와 서울공화국 그리고 그 너머 국가소멸의 미래 앞에 놓인 대한민국을 구할 수 있다.


이은경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이은경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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