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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핫 토픽] 명품이 감싸지 못한 것들

2025-08-15 14:15

반클리프 목걸이, 샤넬백, 바쉐론 시계, 디올 가방…. 김건희 여사 구속 소식과 함께 명품 목록이 쏟아졌다. 수천만원짜리 목걸이와 시계, 가방들까지 줄줄이 등장하자 화려함보다 허탈함이, 분노보다 먼저 '괴리감'이 밀려왔다. 기자 역시 그 리스트를 들여다보다 묘한 씁쓸함을 느꼈다. 누군가는 이 사건을 '권력형 비리'로만 읽겠지만, 많은 이들은 여기서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얼굴을 본다. '어떻게 해서든 명품을 가져야 하는' 취향을 넘어선 집착 말이다.


명품은 더 이상 고급스러운 쇼윈도의 전유물이 아니다. 당근 같은 중고 플랫폼에도 '짝퉁 업자'들이 버젓이 활동할 만큼 주변에 널렸다. 당근에서는 정품의 10~20% 가격으로 가짜 구찌백을 손에 넣는 건 일도 아니다. 대구 서문시장만 가도 명품 가방 하나쯤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모조품이 싫은 사람들은 '중고 명품'으로 눈을 돌린다. 누가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샤넬백, 몇 번이나 손바뀜을 거친 루이비통 지갑이 그렇게 다시 팔린다. 최근엔 김건희 여사 자택에서 명품 시계 케이스와 보증서가 발견되면서 "상품이 좋아서가 아니라 '명품'이라는 이름 자체를 온전히 보관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중고 거래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문제는 그 동기가 '명품을 걸쳐야 나도 대접받는다'는 생각에서 출발할 때다.


기자에게도 명품에 집착하는 친구가 있다. 그는 평소 돈을 악착같이 모은다. 친구들과 모임에서 단 한 번도 돈을 내지 않고 얻어먹고, 점심은 늘 도시락이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산 건 100만원에 육박하는 명품 티셔츠였고, 중형차 한 대 값의 명품 시계였다. 입는 순간 세상의 중심이 된 듯한 자신감이 솟는다고 했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또 사고, 또 아끼고 모은다. 하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는 "커피 한 잔 사줄 여유도 없는 친구와 계속 만나야 하나?", "구찌 옷 입은 사람에게 내가 밥을 사줘야 하나?"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고, 기자 역시 그와의 만남을 서서히 피하게 됐다.


명품이 나를 돋보이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관계까지 대신 빛내주진 않는다. 점심값을 아껴 산 티셔츠가 진짜 나를 증명해주지 않듯, 수천만원짜리 목걸이가 한 사람의 신뢰를 보증해주진 않는다. 오히려 과한 집착은 나를 '명품을 걸친 사람'이 아니라 '명품에 기대 선 사람'으로 만든다.


프라다 신발은 발을 감싸지만, 마음을 감싸주진 않는다. 우리가 목에 거는 건 목걸이만이 아니다. 신뢰, 여유, 배려 같은 보이지 않는 장신구야말로 오래 갈수록 빛난다. 김건희 사건을 보며 분노에 그치지 말고, 우리 각자가 무엇을 걸고 살아가는지 한 번쯤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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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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