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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서제막급

2025-09-01 06:00
전상준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전상준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대구도시철도 3호선 ○○역이다. 승객들이 전동차가 들어오는 쪽을 바라다보며 기다린다.


"참 멋있습니다."


앞에 서 있던 남자분이 나를 쳐다보며 한 말이다. 환하게 웃는 얼굴이 여유롭다. 평소에 듣지 못한 황당한 말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고맙다는 뜻으로 눈인사를 보내고 그를 찬찬히 본다. 표정이 매우 순수해 보인다. 육십대 초반쯤 될 성싶고 옷차림이 단정하다. '초면에 웬 칭찬을….' 긴장하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하다. 나를 보고 '멋있다' 하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조금 의심쩍은 눈으로 쳐다봤으나 그는 태연하다. 또 한마디 한다.


"교장 선생님 같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다가 정년퇴직했습니다."


자기 생각에 확신이 생긴 듯 얼굴이 참 평온하다. 당황스럽기는 해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대답할 말을 잊고 좋은 마음은 숨긴 채 웃기만 했다. 전동차가 들어온다. 한 무리 승객이 내리고 기다리던 승객이 열차를 탄다. 그가 눈으로 승차하기를 권한다. 나는 빈자리를 찾아 앉고 그는 문 앞에 바짝 붙어 서서 아까처럼 웃고 있다. 한 정거장 오니 눈으로 가볍게 인사한 후 내린다.


아주 짧은 만남이다. 지금껏 생면부지로 지내다가 잠시 웃음을 나눴을 뿐이다. 그의 웃음이 나의 행복한 꽃이 되었다. 그 웃음꽃으로 종일 마음이 따뜻했다. 인연이란 말이 생각난다. 인연은 마음으로 만나고, 몸으로 만나고, 눈으로 만난다고 한다. 그와는 어떤 인연일까?


집에 와 아내에게 ○○역 이야기를 했다. 그 사람이 사람 볼 줄 모른다나. 당신 보고 '멋있다' 했다면 무엇인가 숨은 뜻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모자라 그 정도로 끝이 났다면서 조심하란다. 나는 화를 내고 말았다. 우선 아내가 사람 볼 줄 모른다고 한 것은 내가 멋없다는 뜻이니 싫고, 사람의 마음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순수하지 못한 사고(思考)가 성나게 했다. 갑작스러운 나의 대응에 잠시 주춤하더니 한마디 더 한다.


"당신은 그 사람에게 어떤 칭찬을 해주었나요?"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그렇다. 생각하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단정한 옷차림, 순수한 표정,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적극성 등 칭찬할 것이 참 많다. 작은 칭찬이 사람 마음속에 있는 선한 생각을 따뜻하게 하고 격려해 준다고 하지 않는가? 그와는 만날 기약이 없다. 서제막급(噬臍莫及)이다. 칭찬, 아무리 후하게 해도 손해 볼 것 없지 않은가. 나는 아내도, 그도 따라갈 수 없는 부족한 사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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