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늙어가는 처지, 반려동물의 치매와 인간의 미래

문제일 디지스트 뇌과학과 교수
최근 향기박사가 즐겨보는 유튜브 영상이 있습니다. 푸들과 함께 캠핑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인데, 주인은 어딜 가든 강아지의 자리를 먼저 마련하고, 자신의 식사 전에 강아지 밥부터 정성껏 챙깁니다. 이런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식사를 마친 강아지가 침대에서 뒹굴며 재롱을 떠는 모습에 향기박사도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주인과 강아지를 보고 있으면 이들은 정말 가족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인구가 천만 명을 넘어섰고, 반려동물은 이제 단순한 동물이 아닌 진정한 가족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우리와 함께 늙어가는 반려동물은 사람과 같은 노화 현상을 겪고, 종국에는 치매까지 걸려 함께하는 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과학계는 오랫동안 인간 치매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습니다. 그간 치매 연구는 대부분 유전자를 변형시킨 생쥐를 모델로 삼아 이루어졌는데, 이는 생쥐가 자연적으로 치매 병리 현상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위적으로 치매 유발 유전자를 주입한 생쥐 모델은 질병의 일부 측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지만, 인간의 치매 발병 원인을 완벽하게 재현하지 못한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과학자들은 유전적 개입 없이 자연적으로 치매에 걸리는 동물 모델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렇게 찾은 동물이 바로 '대구'가 아니라 '데구(Degu)'입니다. 칠레에 서식하는 설치류인 데구는 생쥐와 달리 노화가 진행되면서 인간의 알츠하이머병에서 발견되는 베타-아밀로이드 플라크와 타우 단백질의 과인산화 현상이 자연적으로 나타납니다. 생쥐보다 수명이 길고, 사람처럼 낮에 활동하는 주행성이라는 점도 치매의 진행 과정을 장기간 관찰하고 인지 능력 변화를 평가하는 데 유리합니다.
데구가 자연 치매 모델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면, 2025년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 로버트 맥기찬 교수 연구진은 고양이 치매에 관한 연구로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이 연구진은 치매 증상을 보였던 고양이 25마리의 뇌를 부검해 인간의 알츠하이머병에서 보이는 것과 매우 유사한 뇌 변화를 보인다는 것을 발견해 European Journal of Neuroscience에 발표했습니다. 특히, 뇌 신경세포 간의 연결고리인 시냅스에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특징인 독성 단백질 아밀로이드-베타가 축적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뇌 염증 반응으로 인해 신경망이 파괴되면서 치매가 악화되는 것도 확인했는데, 이는 인간의 치매 병리 현상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으로, 고양이가 인간 알츠하이머병을 훨씬 더 정확하게 반영하는 '자연 모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동물 치매 연구의 성과는 단순한 학술적 발견을 넘어, 반려동물의 삶과 인간의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반려동물 치매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국내에서는 '제다큐어(Gedacure)'와 같은 반려동물 치매 치료제가 출시됐고, 미국에서는 '아닐린(Anipryl)' 같은 치료제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치료제들은 반려견의 공간 지각 능력, 보호자와의 상호작용, 수면 패턴, 활력 등을 개선하는 효과를 보였습니다. 그동안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반려동물의 치매 증상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큰 희망이 됐죠. 그리고 반려동물의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얻은 데이터와 노하우는 결국 인간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에 귀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는 데구와 고양이 같은 자연 모델을 통해 인간과 유사한 질병의 메커니즘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반려동물은 우리와 함께 사는 동안 가족에게 기쁨을 주고, 또 우리와 함께 늙어가면서 남은 우리를 위한 노화 극복의 귀한 정보를 주고 있습니다. 이제 재롱을 떨며 기쁨을 주는 반려동물에게 더 많은 사랑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이 사랑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중요한 단서를 얻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우리 곁에 있는 반려동물이 오래도록 건강하게 함께할수록, 우리도 오래도록 건강할 테니까요.

김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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