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파크골프의 살아있는 역사 천성희 회장
전국이 파크골프 열풍이다. 대구도 예외는 아니다. 열정이나 동호인 수·선수들의 기량이 타 도시에 비해 월등히 높다.
파크골프의 탄생은 1983년 일본의 홋카이도에서 일본 전국골프회장인 마에하라 아쯔시씨가 주변의 유휴지를 활용하여 골프를 접목한 것이 그 시발점이다. 그럼 우리나라에는 언제 도입되었고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을까? 이에 대한 궁금증을 파크 골프의 살아있는 역사인 천성희(74) 대한파크연맹 회장을 지난 4일 만나 들었다.

대구최초의 여성파크골프동아리 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천성희회장제공>
"2004년 당시 한국여성지도자협회 총재였던 김윤덕 정무장관이 대구에 와서 여성지도자를 대상으로 강연을 했어요. 당시 김 장관은 우리나라도 점점 고령 사회로 진입 중인데 노인들이 경로당에서 고스톱만 하고 있어 건강을 헤치고 있다며, 장수국가인 일본은 노인들이 대부분 푸른 초원에서 파크골프를 친다며 우리도 보고 배워서 도입을 하자는 제안을 했어요."
김 장관은 그 전해에 벌써 <사>대한파크연맹 법인을 설립하여 일본의 IPGA(국제파크골프협회)와 조인식을 맺은 상태였다. 이러한 가운데 당시 여성 지도자협회 대구지부장이었던 천 회장을 비롯해 전국 19명의 여성지도자 들이 일본 후쿠오카 구마모토에서 교육을 받고 왔다. 그곳에서 천 회장은 우리나라 최초로 국제파크골프 지도자 인증을 받았다. 일본에서 돌아 온 천 회장은 여성 지도자들과 대구에서 파크골프를 해보기로 했다.
우선 강변 축구장옆 공원에 장판을 가져갔다. 장판 가운데를 둥글게 오려내고 중심에 낚싯대를 세워서 일본에서 사 온 파크골프채로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공을 쳤다. 2004년 5월 22일 최초의 한·일파크골프 국제교류대회가 서울 올림픽 공원에서 열렸다. 당시 일본의 IPGF에서 파크 골프용품 72세트를 한국에 기증했고, 지역별로 15세트씩 분배했다.
천회장은 용품을 들고 대구시청에 찾아가서 파크 골프를 설명한 후 반승낙을 얻은 후 처음으로 현재의 강변 파크골프장에 가서 지름 20㎝ 화분을 땅에 묻어 홀컵 대신 사용했다. 처음에는 여성지도자 임원 8명으로 연습했으나 화분에 공이 들어가니 재미도 있었고 포장마차에서 월례회를 하는 재미로 회원이 15명쯤 늘었다.
그때 연맹 회장인 김윤덕 정무장관이 파크골프 홍보를 위해 대전에서 전국 파크골프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에 천 회장이 인솔한 대구팀은 1·2·3등을 모두 석권해 대구파크골프의 기세를 올렸다. 이 대회장에서 밀양은 골프장 조성을 위해 만들어 놓은 초원부지에 54홀 파크골프장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자 당장 대구에서도 파크골프장을 만들고 싶었다.
시의 지원을 받으려면 대구시생활체육파크골프 연합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천 회장은 파크골프에 대해 듣도 보도 못한 사람들을 2년 넘게 설득하여 마침내 달성군을 제외한 7개구에서 단체를 만들었다. 마침내 2007년 3월 대구시 생활체육파크골프 연합회를 창립했다. 2009년 11월 강변 파크골프장이 대구 최초로 개장했다.
일본에서 제2회 한·일파크골프 국제 교류 대회를 대구에서 갖자는 연락이 왔다. 당초 IPGA는 KPGF(대한파크골프연맹)를 한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단체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연맹 부회장이던 천 회장이 제2대 회장을 맡으며 서울본부를 대구로 옮겨오고 2012년 대구에서 제2회 한·일파크골프 국제교류대회를 치르게 된다.
파크골프가 들어온 지 21년, 대구에도 이제 파크골프장이 33개나 생겼다. 도입하는데 많은 역할을 했던 김 전 장관은 3년 전 작고했고, 일본에 처음 연수갔던 19명의 여성 지도자 중 파크골프에 종사하는 사람은 천 회장뿐이다. 전국 17개 지부를 거느린 연맹의 회장인 그녀는 요즘 지도자 양성에 힘쓰며 파크골프의 역사를 기록한 백서도 발간 중이다. 연맹 홈페이지를 보니 이런 글귀가 보인다. '우리나라에 파크골프를 최초로 도입한 단체입니다.'
글·사진=박태칠시민기자 palgongsan72@kakao.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