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기반 인재 양성, 산업·생활인프라 연결 ‘경제 선순환’

경산이노베이션 아카데미 '42경산' 장영실룸에서 교육생들이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42경산에는 교수도, 교재도 없다. 교육 과정 전반을 스스로 해야하는 42경산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자기주도적 학습·문제 해결 '42경산'
소통·협업…글로벌 리더 실무 익혀
소비·여가 충족 산단 내 아웃렛 건립
ICT+재활 어린이재활기기 실증센터
미래차 스마트 산업기반 핵심 공급지
초거대 'AI 클라우드팜' 생태계 조성
경산은 한때 포도와 대추, 묘목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떨친 농촌 도시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동차 부품, 섬유, 기계·금속, 전자장비가 집적된 제조업 중심지로 변모했다. 더 나아가 경산지식산업지구를 중심으로 방송·보안 장비, 드론, 바이오소재 기업들이 들어서며 산업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이제 경산은 또 한 걸음을 내딛는다. ICT와 AI 기술을 기반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유통의 혁신을 준비하며 또 다른 변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경산 이노베이션 아카데미는 창의적인 교육 방식으로 유명한 프랑스 소프트웨어 혁신교육기관인 '에콜42'의 교육 라이선스를 획득해 '42경산' 캠퍼스를 대구대에 개소했다. 사진은 1층 로비에서 바라본 42경산 캠퍼스 모습.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대구대에 자리잡은 경산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미래를 준비하는 능동적 인재가 모인 '42경산'
부산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던 백상호씨. 그는 우연히 접한 비전공 프로그램 강의를 듣곤 이 분야에 흥미를 느꼈다. 그는 곧바로 휴학계를 제출하고 '42경산'에 등록했다. 42경산에서 스스로 익힌 지식과 기술로 백씨는 최근 글로벌 자동차 부품기업의 인턴 과정을 시작했다.
'사람'은 42경산의 핵심이다. 물론 농촌과 제조업 같은 1·2차 산업도 마찬가지다. 기술도 다르지 않다.
경산이노베이션아카데미가 운영하는 42경산은 전통적인 교육 모델을 과감히 탈피한 실험의 장이자 '대학도시' 경산의 또다른 인재양성소다. 42경산은 프랑스에서 시작된 컴퓨터과학 교육기관 에꼴42의 방식과 인프라를 도입한 교육기관이다. 2024년 2월 1기 본교육 과정을 시작으로, 올해 4월부터는 3기 본교육이 시작됐다.
이곳에는 교수도, 교재도, 시험지도 없다. 교육생들은 프로젝트를 직접 설계하고 팀을 꾸려 문제를 해결하며 동료의 평가를 통해 성장한다. 이는 단순한 학습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문제 해결 능력과 자기 주도성을 키우는 구조적 전환이다.
첫 관문은 '라피신(집중교육)'이다. 4주간 강도 높은 훈련을 거치면서 교육생들은 협업과 소통, 자기주도학습의 기본기를 다진다.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도전 과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에 몰입과 긴장의 연속이다.
본과정의 교육 범위는 인공지능, 클라우드 컴퓨팅,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보안 등으로 확장된다. 교육생들은 주제를 스스로 정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과정에서 마주치는 난관을 해결하며 실력을 쌓는다. 중간중간 해외 해커톤 참가, 글로벌 리더십 프로그램, 산업 현장 견학, 전문가 특강이 이어져 실무 감각을 키운다.
42경산의 교육은 철저하게 자기주도적이며 협업을 중시한다. 교육생 한 명 한 명의 기술적 발전은 물론 그 한 명과 또다른 한 명이 팀을 이뤄 문제를 해결한다. 적극적이고 바람직한 팀워크의 모습이 여기 있다. 교수도 교재도 없는 42경산은 어찌 보면 큰 부담이다. 그러나 이 부담을 이긴 교육생은 이 시스템에 큰 성취감을 느낀다.
백 씨는 "배우는 재미를 느끼니 학습의 동기도 커졌다"면서 "원하는 만큼 공부하면, 그만큼 학습량과 재미도 무한히 커진다"고 말했다. 또 "필요한 건 스스로 알아보고 모르는 것은 그룹스터디를 한다거나 어떻게든 익히려고 하는 능동적인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산이노베이션아카데미 관계자는 "스스로 그리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깨우친 교육생들의 열정이 시너지를 만든다"면서 "기업에서 이런 점을 매우 좋게 평가한다"고 말했다.

경산시 와촌면 지식산업지구 2단계부지에 들어설 경산 현대프리미엄아웃렛 조감도. '경현아'는 경산의 여가생활 수준도 함께 높일 경제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2028년 상반기 오픈을 앞두고 있다. <경산시 제공>
◆산업과 생활을 잇는 '현대프리미엄아웃렛'
산업이 성장하려면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비나 여가와 같은 문화생활 수준도 함께 높아져야 한다. 경산 지식산업지구 2단계 부지에 들어설 경산현대프리미엄아웃렛은 바로 그 연결고리다.
패션, 가전, 생활용품 등 다양한 브랜드 매장이 배치되고, 중앙 광장에서는 계절마다 다른 테마의 행사와 공연이 열린다. 곳곳에 배치된 휴식 공간과 카페, 레스토랑은 쇼핑의 틈새에서 여유를 제공한다.
이 아웃렛은 산업 종사자들에게는 퇴근 후나 주말에 찾을 수 있는 생활 편의 공간이자, 외부 방문객에게는 경산을 찾을 이유가 된다. 외부 인구 유입은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주고, 지역 상권과 관광 자원과의 연계도 가능하다.
또 경산은 한강 이남 가장 많은 대학교가 밀집하고 있는 축복받은 대학도시인 만큼 인재들이 경산을 즐기고 정주조건인 인프라가 되는 셈이다.

재활의료산업과 ICT 기술의 결합으로 실증 기반의 평가·지원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공공 컨트롤타워 및 통합 플랫폼 역할을 하게 될 'ICT융복합 어린이 재활기기 실증센터'의 조감도. 올해 12월 완공을 계획하고 있다. <경산시 제공>
◆사람을 위한 기술의 집 'ICT융복합 어린이 재활기기 실증센터'
어린이를 생각하는 곳도 있다. 다친 어린이가 다시 걷고 마음껏 놀 수 있도록 돕는 장치를 만들어내는 곳이다. 바로 ICT융복합 어린이 재활기기 실증센터다.
센터의 내부는 기능별로 명확히 구분된다. 재활훈련 인지평가실에서는 첨단 센서가 아이의 손과 발, 시선의 움직임을 추적한다.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는 장비시험실로 옮겨져, 개발 중인 기기에 반영된다.
장비시험실은 또 다른 세상이다. 장시간 사용 시 내구성, 반복 동작에 따른 부품 마모, 강한 압력과 충격에 대한 안전성 등을 인위적 환경에서 시험한다. 시제품 제작실과 3D 프린팅실은 맞춤형 장치를 만드는 공간이다. 보조기의 무게, 소재의 촉감, 피부와 닿는 부위의 마찰까지 세심하게 고려된다. 완성된 시제품은 다시 실증 공간으로 옮겨져, 실제 사용자의 반응과 결과를 바탕으로 개선된다.
12월 완공 후, 센터가 가동되면 경산은 'ICT+재활'이라는 특화 분야에서 전국적인 기준점을 세울 것이다.
◆미래차 전자 제어부품 산업 고도화
경산의 산업 지형에서 미래차 전자 제어부품 산업 고도화는 단순한 자동차 부품 사업이 아니다.
자동차의 엔진이 심장이라면, 전자제어장치(ECU)는 두뇌다. 이 장치는 차량의 주행, 제동, 조향, 안전 시스템을 제어한다. 경산은 이 두뇌를 더 정밀하게, 더 안정적으로, 그리고 더 스마트하게 만드는 산업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경북IT융합산업기술원에 이 사업을 위한 시설 내부에는 다양한 성격의 시험 공간이 구획돼 있다. 전자파 잔향실은 외부 간섭이 완전히 차단된 밀폐 구조물로, 내부 표면은 특수 금속 패널로 덮여 있다. 실제 도로 주행에서 주변 기기나 인프라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장치의 오작동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주파수와 전자파 환경 테스트는 필수다.
소프트웨어 개발·검증실은 또 다른 핵심 공간이다. 수십 대의 워크스테이션과 시뮬레이션 장비가 연결돼, 가상의 주행 환경에서 ECU 프로그램을 반복적으로 시험한다.
이 산업 기반이 경산에 자리 잡으면 경산은 전동화, 자율주행,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시대의 핵심 공급지로 발돋움하게 된다.
◆초거대 AI 클라우드팜 실증·확산 환경 조성
2020년대 들어 가장 주목받은 화두는 역시 AI다. 경산도 초거대 AI 클라우드팜의 일부로 이 AI 구상에 함께한다.
경산에 자리잡은 경북IT융복합산업기술원의 서버룸. GPU 서버 14대와 H100 칩 112개가 쉴 새 없이 연산을 수행한다. 여기서는 AI모델 개발과 기업 컨설팅을 제공한다.
경산 소재의 오토노머스에이투지, 이스트, 한스네트워크, 와이즈넛은 차량 AI 어시스턴트 서비스를 실증한다.
이들은 노면과 교통흐름 현황, 차량상태 알림, 유용한 정보 공유 등 AI를 활용해 운전자의 편의를 증대하는 서비스를 확산시키는 데 일조한다.
이 흐름은 교육과 창업 지원으로도 이어진다. 경북IT융복합산업기술원, 영남대학교, 대구대학교가 각각 AI 교육, 기업 지원, 창업 경진대회를 열어 인재와 아이디어를 키운다.
이 모든 거점들은 개별로도 가치가 크지만, 서로 연결될 때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재활기기 실증센터의 데이터가 초거대 AI 클라우드팜에서 분석되고, 미래차 산업에서 생성된 데이터가 42경산의 교육 콘텐츠로 활용된다.
교육을 통해 성장한 인재는 다시 기업으로, 기업은 생활 인프라로 이어져 순환 구조를 만든다.
이것이 경산이 그리는 미래 지도다. 산업, 교육, 생활이 맞물려 서로를 강화하고 한 도시 안에서 완결된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 그 미래는 이미 경산이라는 지도 위에 차곡차곡 그려지고 있다.
글=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박준상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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