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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의 시대공감] 조용히 확산되는 일류

2025-09-19 06:00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문화평론가

'극장판 귀멸의 칼날'이 조용하지만 뜨거운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하지만 흥행세가 놀랍다는 이야기다. 8월22일에 개봉한 후 9월15일 기준으로 무려 446만 관객을 모았다. 이대로라면 500만 돌파는 기정사실로 보인다. 극장 흥행 시장이 거의 붕괴하다시피 한 요즘 상황에 500만 흥행은 정말 놀라운 성과다. 코로나 사태 이전이었다면 천만 명을 뛰어넘는 흥행 열기였을 것이다. 올해 개봉 당일 최다 관객(51만 명), 일일 최다 관객(60만 명), 최단 기간 100만 달성(2일) 등 각종 흥행기록들도 줄줄이 깼다.


이 작품은 군국주의 미화 논란이 있었던 일본 만화영화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요괴 잡는 무사단의 이야기라서 자연스럽게 군국주의 시절의 사무라이 분위기가 묘사되고 특히 주인공 귀걸이의 문양이 전범기와 유사하다는 점이 논란이 됐다. 하지만 관객, 특히 젊은 관객들은 그런 논란에 개의치 않았다. 그 결과 광복절이 있는 8월에 개봉한 일본 사무라이 만화영화가 '좀비딸'과 더불어 올 여름 최고 히트작으로 떠올랐다.


특히 20대 남성의 호응이 뜨거운데 그건 이 영화에 젊은 남성이 선호하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하드 고어 액션이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것과 더불어 요즘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다보니 그 반대급부로 일본 문화에 좀 더 관대해진 측면도 있다. 한편 한류의 확산으로 일본에서도 젊은 누리꾼들 사이에서 한국에 대한 호감이 커졌다. 그 결과, 과거엔 한일의 젊은 남성 누리꾼들이 인터넷 게시판에서 서로를 향한 증오를 표출할 때가 많았지만 요즘은 그런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남성들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 전체에 일본 문화에 대한 호감이나 친밀감이 커져가는 추세다. 여성들도 일본 여행을 즐기고, 일본의 아기자기한 캐릭터 등에 빠져든다. 최근 경향신문의 '2030 대일 인식조사'에선 젊은 세대 66%가 향후 한일관계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답했다. 또 66.3%가 '일본 문화와 제품을 즐기면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정치외교적 문제와 별개로 문화는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 대해 전면적 불매를 선언했던 몇 년 전과는 달라진 분위기다.


이렇게 달라진 분위기 속에서 '일류'라는 일본 문화 확산 현상이 나타난다. 한류는 케이팝 스타 등을 중심으로 화려하게 확산되지만 일류는 생활 문화를 중심으로 조용하게 펴져간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대도시 '핫플레이스'에 넘쳐나는 일본식 음식점들이나 만화, 게임 등 하위문화를 중심으로 저변을 넓히는 것이다. 또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일본 진출을 시도하면서 일본과의 합작 프로그램들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한국 안방극장에서 일본어 노래들이 여과 없이 방송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 이에 대해 별다른 사회적 반발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사무라이 만화영화가 올 여름 극장가 최대 히트작 중의 하나가 된 것이다.


한류가 워낙 압도적이지만 그렇다고 일본 문화의 경쟁력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일본엔 여전히 문화대국의 저력이 있다. 사실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도 일본 자본이 만들었다. 여전히 우리가 벤치마킹할 부분이 있고, 또 중국의 위협이 커질수록 일본과의 협력 필요성도 커질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일본과의 정치외교적 이슈와 문화교류를 별개로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늘어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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