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경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인천에서 택배기사로 일하는 26세 청년 정상빈 씨. 정 씨는 6년 동안 택배로 3억 원을 벌었다고 한다. 매일 30㎞를 걷고 하루 600~700개, 한 달 1만7천건을 배송한 결과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TV 방송에서는 놀랍도록 빠른 배송 능력과 한 달 1천만 원을 웃도는 수입을 자랑했지만,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시간도 없이 토할 정도로 뛰고 두세 달 만에 신발이 닳아나가는 청년의 삶은 안쓰러웠다. 그의 '갓생'을 통해 남들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뛰면 6년 만에 3억 원을 벌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정 씨와는 달리, 일을 하지 않고 구직도 포기한 '쉬었음' 청년은 빠르게 늘고 있다. 청년층 취업자는 외환위기 이래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으며, '그냥 쉬었음' 청년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청년 고용률은 최근 3년간 46.1%에 머물러 OECD 평균(55.1%)을 크게 밑돈다.
청년 실업은 쉽게 '나 때는'론자 또는 비판론자의 시각으로 해석된다. 개인의 능력과 의지가 부족하다는 사람, 요즘 청년들은 힘들고 어려운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람들에겐 '나 때는'의 열정과 노력이면 해결하지 못 할 문제가 없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개인에게 귀착시키면 구조를 보지 못한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대학까지 나와도 월급 200만 원대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평균 연간 소득은 2천625만 원에 불과하다. 어렵게 취직을 해도 학자금 대출 상환과 생활비를 빼고 나면 월급은 통장을 스치는 수준이다. 거기다 고용은 불안하고 최소한의 작업 안전도 보장되지 않고 조직문화는 전근대적이기 일쑤다. 그 속에서 현실을 뛰어넘는 미래를 꿈꿀 수나 있을까.
능력은 없는데 청년들의 눈높이만 높다고? 고용노동부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청년들의 구직조건은 월 급여 235만 원 이상, 통근 시간 63분 이내, 추가 근무 주 3.14회 이내, '깨끗한 화장실'과 '휴게공간'이었다. 문제는 청년의 눈높이가 아니라, 청년에게조차 맞추지 못하는 기업의 눈높이다.
개인의 노력으로 문제의 본질을 돌려본들 현실은 사회 구조와 정책의 과제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함부로 청년 문제를 청년들 탓으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꼰대'를 넘어 '무개념의 매국노'가 된다.
지금까지의 청년 대책은 기업에 청년 채용을 요청하고 청년 창업 지원을 약속하는, 본질적 처방보다 '청년 달래기 쇼'에 가까웠다. 일시적 고용 확대는 경기 변동에 휘둘릴 뿐, 장기적 대안이 될 수 없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청년 고용의 구조적 한계와 불안정한 노동 체제를 바꾸는 일이다. 불안정·저임금 일자리를 줄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산업 구조를 개혁하고, 청년들이 수도권에만 몰리지 않도록 지역 기반의 혁신 산업과 정주 환경을 동시에 키워야 한다. 교육과 노동시장의 괴리를 줄이는 직업 교육과 재훈련 체계 개편도 필요하다.
'쉬었음' 청년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의 구조적 실패를 드러내는 지표다. 청년의 '갓생'은 칭찬받을 개인의 서사가 아니라 사회가 외면한 노동과 희생의 다른 이름이다.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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