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으로 긴 추석 연휴에도 정치권의 공방은 그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 부부가 종합편성채널 JTBC의 예능 프로그램인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7일 밤 방영)을 놓고서는 첨예한 설전이 오갔다. 이번 논쟁은 일종의 에피소드로 넘어갈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한국정치의 미성숙 단계를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야당은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행정정보시스템이 마비된 상황에서 이 대통령 부부가 예능 프로그램 녹화방송에 임한 것을 놓고 '대통령 홍보용의 부적절한 처신이다. 48시간 동선을 해명하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 "경주APEC을 앞둔 K-FOOD 홍보용"이라고 반박했다. 양쪽의 시각은 얼추 일리가 있겠지만, 사전 녹화시간대가 화재 발생과 복구로 긴박한 상황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통령의 행보에 아쉬운 점이 남는다. 나아가 야당 대표까지 얽어넣는 고소고발전으로 비화한 것은 심히 유감스럽다.
대통령의 출연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재명 정권 집권 이후 당면한 난제들을 고려하면 적절한 행보가 아니라는 비판도 새겨들어야 한다. 민주당 정권의 논리를 그대로 차용하면 '내란 사태가 종식되지 않고, 미국의 관세 압박이 거세며, 민생이 어려운 시기'에 취임 5개월차의 대통령이 한가하게 적지 않은 녹화시간을 할애하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면 그건 앞뒤가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 되기 때문이다. 행여 화재 현장 같은 불편한 장소는 정권 인기에 도움 되지 않고, 화기애애한 예능 프로그램은 유리한 도구라고 인식한다면, 그건 국정운영의 실책이 될 것이다. 대통령의 행보는 보다 진중해야 한다.
[사설] 수갑찬 이진숙…'정치경찰' 등장의 신호 아니길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2일 경찰에 긴급체포됐다가 이틀 만에 법원 결정으로 풀려났다. 경찰은 국가공무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 전 위원장이 6차례나 출석 요구에 불응해, 법적 절차를 거쳐 체포했다고 밝혔다. 반면 이 전 위원장은 경찰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여하튼 많은 국민들은 추석 연휴 시작 전날 수갑 찬 이 전 위원장의 모습을 TV와 SNS를 통해 봤다.
경찰의 이 전 위원장 체포는 검찰청 폐지 방침으로 경찰 권력 비대화에 대한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발생했다. 민주당이 방송통신위원회를 폐지하는 대신 방송통신미디어위원회를 신설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이 전 위원장이 자동 면직된 지 이틀 만의 일이다. 이 전 위원장은 민주당의 방통위원장 자진 사퇴 요구를 거부했고, 방통미디어위원회 설치도 반대했다. 이 전 위원장이 받는 공직선거법 등의 위반 혐의는 긴급체포할 정도의 중범죄가 아닌만큼, 수갑 찬 이 전 위원장의 모습은 현 정부에 반대하면 누구나 체포될 수 있다는 공포감을 심어줄 만했다.
검찰개혁으로 나타난 결과가 이 전 위원장 체포 같은 것이라면, 검찰개혁은 안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검찰이 정치권력에 야합할 때 우리는 '정치검찰' 해체를 외쳤다. 정치검찰이 빠져나간 자리를 '정치경찰'이 차지하는 것은 상상 밖의 일이다. 검찰청 폐지는 1년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에 현실화된다. 남은 1년 동안 경찰, 공소청, 중수청, 공수처 등 수사기관들간 견제와 균형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 같은 장치는 여당 단독으로 처리해서도 안된다. 민주당은 언젠가는 야당이 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래야 수사기관이 정치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사설] 커지는 반중·반미 시위, APEC 성공 방해해선 안 돼
이달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기간에 반(反)중·반미 집회나 시위가 격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서울과 대구 등지에서 열리는 반중·반미 집회가 경주로까지 확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명동 등지에서는 정부 단속에도 불구하고 반중 시위가 지속하고 있다. 추석 연휴 첫날이자 개천절인 지난 3일 서울 도심 곳곳에서 극우 보수단체의 반중 집회가 열렸다. 이재명 대통령이 전날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특정 국가와 국민에 대한 혐오와 관련해 '백해무익한 자해행위'라며 경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집회에선 노골적인 혐중 발언이 쏟아졌다. 앞서 지난 2일에는 대구에서 미국의 관세협상 압박, 한국인 구금 사태와 관련해 반미 집회가 열렸다. 대구지역 한 퇴직 교사단체가 캠프 워커 미군 부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주한미군 철수'를 외쳤다. 동대구역 신세계백화점 앞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기자회견도 이어졌다.
APEC을 20여일 앞둔 상황에서 반중·반미 시위가 반복되면 중국, 미국과의 관계 악화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한국은 지난 12·3 비상계엄 사태로 국가 신인도가 땅에 떨어지고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으로 총체적 위기 상황이다. 우리가 거친 발언을 쏟아낸다고 해서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각국 정상과 수행 인원이 경주를 방문하는 가운데 반중·반미 시위로 국가 이미지를 떨어뜨릴 수 있다. 문제 해결은커녕 상대를 자극하는 강경 발언은 가급적 삼가야 한다. 한국이 의장국인 APEC은 우리의 대외 위상을 회복하고, 경제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APEC 성공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곱씹어볼 일이다.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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