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포티. <챗GPT 이미지 생성>
기자는 추석 연휴, 오랜만에 동창들과 만났다. 40대 중반. 술잔을 기울이며 웃음과 자조가 뒤섞였다. "후배들이 영포티라고 놀리더라" 친구 한 명이 툭 내뱉었다. 평소 즐겨 쓰던 야구 모자, 유명 스포츠 브랜드 티셔츠, 그리고 큰맘 먹고 바꾼 휴대전화가 문제였다. 젊은 척한다고 놀림 받았다는 것. 다른 친구가 맞장구쳤다. "그렇다고 아재 패션을 입을 수도 없잖아" 말끝은 웃음이었지만, 어딘가 씁쓸했다.
'영포티(Young+Forty)'. 한때는 긍정의 상징이었다. 경제력과 취향을 모두 갖춘 '멋진 40대'를 뜻했다. 하지만 요즘 '영포티'는 조롱의 말이 됐다. SNS에서는 '스윗 영포티'란 단어도 등장했다. 겉으론 '달콤한 40대'를 뜻하지만, 실제로는 젊은 여성에게 과하게 친절한 중년 남성을 비꼬는 표현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사무실 스윗영포티 꼴보기 싫다', '영포티 때문에 폰 바꿨다'는 글들이 이어진다. 유행을 좇는 중년은 더 이상 '멋진 아저씨'가 아니라 인터넷 밈(meme)으로 소비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시선은 다르다. 재력을 갖춘 40대는 주요 소비층이다. 한 온라인 쇼핑몰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40대 남성의 골프웨어 구매액은 전년보다 37% 늘었다. 인스타그램의 '#영포티룩' 해시태그는 4만건을 넘었다. 어떤 이는 '아재 아닌 영포티'라며 자조 섞인 글을 남긴다. 조롱과 자기표현이 공존하는 세대, 바로 오늘의 40대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40대를 향한 조롱에는 세대 간 미묘한 불편함이 깔려 있다. 지난해 40대의 평균 자산은 5억8천만원, 20대 이하는 1억4천만원 수준이다. 젊은 세대의 비난에는 패션보다 '부의 격차'에서 비롯된 거리감과 반감이 함께 섞여 있다. 영포티는 그렇게 세대 갈등의 또 다른 얼굴이 됐다.
40대는 '영포티'로 불리기 전 '낀세대'였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겪었고, 경제 호황과 불황을 동시에 경험했다. 윗세대에게는 철없어 보이고, MZ세대에게는 구식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만큼 세상을 온몸으로 버텨온 세대다. 젊게 보이려는 게 아니라,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온 것뿐이다.
올해 초 사회초년생인 사촌동생과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내 명함을 본 그는 "팀장이네? 나 사무실에서 팀장님이 제일 무서운데. 근데 언니가 팀장이네." 그렇다. 그들이 놀리는 '영포티'는 사무실에서 서툰 후배를 이끌고, 최신 휴대전화를 일시불로 결제할 만큼의 재력을 가진 세대다. 어쩌면 우리는 '젊은 척'하는 게 아니라, 여전히 젊다. 그들이 놀리는 '영포티'가 바로 오늘의 사회를 움직이는 세대다. 그러니 영포티들이여, 그들이 놀린다고 주눅 들 필요 없다.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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