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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영남일보 100년, 자유를 넘어 사람과 지역의 가치를 향해

2025-10-12 20:23

1945년 8월15일. 해방은 모든 것의 첫 출발이었다. 순수의 시대이자 이념(理念) 분출의 서막이었다. 모든 것을 가질 것 같았지만, 모든 체제는 여전히 미지수였다. 영남일보는 그 순수와 열망의 시간속에 탄생했다. 설레임과 각오를 한껏 담은 창간사는 이렇게 기록한다.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와 요운(妖雲)에 가려 자기 본성을 발휘하지 못했음을 반성하며...무궁화 삼천리 강산 건국성업(建國聖業)의 초석이 되고 당파와 알력을 초월하여 3천만 동포에게 진실한 보도전사(報道戰士)가 되려는 바이다"


#6.25와 낙동강 시대의 영남일보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이 해방둥이 지역종합일간지 영남일보에게 뜻밖의 민족적 중책을 안겨주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수도 서울의 모든 신문이 사실상 정간하면서 영남일보는 낙동강 전선의 전황을 알리는 전국 유일의 일간지 역할을 맡는다. 고향을 등지고 팔도에서 몰려든 피난민에게 영남일보 호외는 생사를 알리는 뉴스였다. 대우그룹 창업자인 김우중은 당시 영남일보 신문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고 자서전에 적었다. 시인, 소설가 문인들이 영남일보 둥지에서 움트기 시작했고, 전황속의 예술이 신문사 주변을 맴돌았다. 전쟁은 한편 임시수도 대구의 전성시대이기도 했다.


#자유와 민주의 길목에서


역사는 간혹 혼돈스럽다. 씨줄 날줄의 사실들이 기억속에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이승만 정권이 독재로 치달으면서 영남일보는 자유와 민주의 기치를 '전가의 보도(寶刀)'로 삼았다. 편집국장이자 주필이던 구상 시인은 기관총을 쏘며 집으로 난입한 군인들에게 맞섰다. 구상 주필은 후일 5.16 쿠데타의 주역이 되던 박정희와 교분을 맺고 나라를 걱정했다. 역사는 그렇게 태동됐다. 대구 고교생들이 반(反)독재 민주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2.28 항거는 세계적 뉴스가 됐고, 영남일보는 역사의 현장을 실시간으로 전했다. 4.19를 거치며 대한민국은 쓰레기속에서도 장미꽃을 피우는 실험대로 올라탔다.


# 대한민국 근대화의 궤도에 선 지역종합일간지


영남일보는 대한민국 근대화의 궤도와 충첩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해방둥이 지역 일간지의 나이는 대한민국의 성장 연도와 같다. 대한민국이 조국 근대화의 대약진속에 민주화 투쟁이란 난제에 봉착했듯이 영남일보 저널리즘도 영광과 고난이 겹쳐졌다. 국가경제가 성장하면서 영남일보는 한때 취재 전용기를 보유한 대한민국 유수 언론으로 우뚝 솟았다. 동시에 남북의 첨예한 대립, 계엄령과 10월 유신의 파도속에 자유언론은 절체절명의 목표가 됐다. 1980년 신군부의 등장은 민주언론 영남일보의 폐간이란 가혹한 시련을 안겼다. 그게 끝이면 언론의 존재가 아닐 것이다.


#로컬 퍼스트와 미완의 지방시대


1989년 4월19일, 8년여만에 복간한 영남일보는 다시 창간의 정신으로 돌아갔다. 민주화 시대의 대항해에 지면의 영혼을 실었다. 민주주의 완성은 대한민국 모든 언론의 책무이기도 했지만, 영남일보 면전에는 별도의 시대적 과제가 주어지고 있었다. 영남일보가 딛고 공존하는 지역, 대구경북의 번영이다. 국가주의는 여전히 팽배하지만 과거와 달리 엷어졌고,세계는 지역과 도시간 경쟁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국가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비수도권 지방은 상대적으로 열악함에 빠지는 모순의 악순환을 해결하라는 책무가 지역언론 앞에 다가왔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수도권 일극주의다. 8대2의 불균형을 깨쳐야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문화대국으로 우뚝선다는 주창은 지역언론의 사명감을 불태웠다. 2000년 즈음에 대구에서 태동한 지방분권 운동, 2007년 영남일보가 기획한 '로컬 퍼스트(Local First)'의 기치는 지역 언론사에 기록될 것이다. 정치적 자성도 촉구했다. '토종TK-서울TK'의 개념을 도출하고 지역 정치인들의 분발을 끝임없이 촉구하는 것은 국토의 수직적·수평적 공정함의 실현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게 지방언론에 주어진 특별한 책무임을 영남일보가 잊지 않기로 다짐하는 이유다.


#사람과 지역의 가치


영남일보는 10년전 창간 70주년을 맞아 '사람과 지역의 가치를 생각한다'는 모토를 내걸었다. 여전히 진행형이다. 인본주의와 지역문화의 번성은 인류의 영원한 주제이다. 1946년 영남일보에 발양정기(發揚正氣)의 휘호를 선사한 바 있는 백범 김구 선생이 꿈꾼 '문화대국, 대한민국의 염원' 과도 맞닿아 있다. 지역과 사람의 가치는 어디로 향하는가? 영남일보는 일찍이 2002년 '솔라시티를 향하여'란 기획으로 인류의 에너지와 기후변화를 감각적으로 다뤘다. 자치와 분권, 소외와 정의를 주제로 한 끝없는 기획도 보태졌다. 대구의 골목길에서부터 포항의 영일만대교까지 우리는 모든 것을 꿈꾼다. 세계적 순풍이 된 작금의 K-컬처는 지방의 융성과 번성에 기초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AI와 빅데이터의 시대를 향해


80년의 기록은 분명 100년을 향한 출발이다. 언제나 그렇듯 미래는 불확실하다. 미래에는 공정과 정의, 지역 시민사회의 건강함을 구축하는 지난한 과제가 다시 진행될 것이다. 동시에 주변을 감싸는 미래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AI와 로봇, 빅데이터와 정보화 시대가 만개할 태세다. 저널리즘은 현존의 진리를 추구하는 동시에 미래 비전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그 명제의 중차대함을 영남일보는 일초의 순간에도 방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다시 자각한다. 80년의 역사가 자부심이 되어 100년의 그날,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축하가 밀여올 그 때를 꿈꾸며 재차 정진할 것을 지면을 통해 약속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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