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지역 벼재배 면적의 6%가 잎에 암갈색 병반이 발생하는 깨씨무늬병 피해를 입었다. <구미시 제공>
울진읍에서 벼농사를 짓는 김모(67)씨는 올가을 논에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평소 같으면 이맘때 벼이삭이 황금빛으로 고개를 숙여야 하지만, 올해 논은 색을 잃은 채 군데군데 쓰러져 있다. 장마가 끝날 기미가 없더니 이삭이 말라가고, 벼잎에는 까만 반점이 번져갔다. 벼이삭을 손에 쥐어보면 낟알 사이에서 새싹이 돋아 있다. 김씨는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비가 며칠씩 내리니 벼가 흙탕물에 잠겨 버렸다"며 "낟알이 싹이 터버려 도정해도 쌀이 안 되고, 기계도 들어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가을 수확철 내내 이어진 비로 경북 지역 벼농사가 병충해와 수발아 피해를 동시에 겪고 있다. 잎에 깨씨 모양의 암갈색 병반이 생기는 '깨씨무늬병'과 낟알에서 싹이 트는 '수발아', 일부 지역에선 도복 피해까지 겹쳤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경북 전체 논벼 재배면적(8만6천647㏊) 중 7천300㏊에서 깨씨무늬병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피해가 확산하자 '깨씨무늬병'을 농업재해로 공식 인정했다. 병해충이 농업재해로 지정된 것은 지난해 벼멸구 피해 이후 두 번째다.
특히 포항과 울진 등 해안 지역은 비바람에 벼가 쓰러지면서 낟알이 습기에 오래 노출돼 피해가 심하다. 상주·문경 등 내륙 지역도 수확기 장마로 수발아 현상이 확산 중이다.
경북도 관계자는 "논이 젖은 데다 땅심이 약한 지역은 벼가 쓰러지면 싹이 더 잘 트는 특성이 있다"며 "도청과 농업기술원이 현장 조사를 진행 중이며, 피해 집중 지역은 별도 점검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발아가 발생하면 쌀 품질이 급격히 떨어진다. 벼가 서 있는 상태에서 미량의 수발아는 도정 과정에서 제거가 가능하지만, 쓰러진 벼에서 발아가 진행되면 낟알이 변색되고 곰팡이가 생겨 상품성이 크게 낮아진다. 일반 벼의 경우 수발아율이 10%일 때 수확량이 약 3~5%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경북 전체 평균 수발아율은 2~3% 수준으로 파악되지만, 포항과 울진 지역은 이보다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철수 경북도 스마트농업혁신과장은 "수확 시기를 더 늦추면 낟알이 썩거나 싹이 더 많이 틀 수 있어, 농가들은 비가 그치면 곧바로 수확에 들어가고 있다"며 "깨씨무늬병 피해 규모는 11월 초 조사가 끝난 뒤 확정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운홍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