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형 음악인문학자·대구챔버페스트 대표
최근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뉴스 가운데 하나는 단연 캄보디아 사태이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고수익 보장이라는 꿈을 찾아 고국을 떠났지만, 현실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들의 고통과 비참한 죽음은 인간의 존엄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어디에서 끝나는가를 묻고 있다. 뉴스는 '사망자 수'를 연일 보도하지만, 그 숫자 안에는 분명 이름이 있고, 꿈과 희망 그리고 한 사람의 시간이 있었을 거다.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도 사라진 이들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제주 4·3 사건의 기억과 상처를 다루면서도, 작가는 역사적 사실을 직접적으로 고발하지 않는다. 대신 기억의 윤리를 '고통을 감각하는 능력'으로 되살려낸다. "끝내 작별하지 않겠다." 이 단호한 문장은 떠난 자와 남은 자,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짐이자, 역사를 현재화하는 인간적 선언이다.
소설은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된다. 1부 '새'에서 작중인물인 경하는 친구 인선의 부탁으로 앵무새 '아마'를 돌보러 제주로 향하게 되지만, 그곳에서 죽은 새의 흔적을 마주하며 존재의 심연으로 내려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2부 '밤'에서는 4·3 당사자인 인선의 어머니 정심의 기억이 주된 스토리를 형성한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의식은 서로를 향해 진동한다"는 말처럼, 가족을 잃은 정심의 기억 속에서 4·3의 상처가 되살아나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아픔이 클로우즈업 된다. 3부 '불꽃'에서 인선과 경하는 역사적 비극의 의미와 고통의 완전한 해소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하며, 다만 '기억의 불꽃'으로 남겨 둔다. 경하는 그 기억의 불과 꽃을 잊지 않고, 작별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가 불꽃이 된다.
한강 소설은 역사를 드러내기보다 고통의 감각을 체화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윤리를 묘사한다. 폭로보다 연민, 사실보다 감각으로 비극의 무게를 독자로 하여금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작가의 책무는 진실을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사라져간 이들의 고통을 인간의 언어로 끝까지 붙드는 일이다. 그리고 단지 슬퍼하는 일이 아니라, 살아남아 진정 애도하는 일이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하나의 질문이 놓여 있다.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사라짐'을 떠올린다. 이 경우 사라짐은 부재나 망각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존재로 이행하는 일이다. 사라짐은 패배가 아니라 통과의례이며, 단절이 아니라 변주인 셈이다. 장 보드리야르는 "인류는 사라짐의 방식을 발명한 유일한 종이자, 사라짐의 예술"이라 말한다. 이런 사라짐의 시간이 허무로 흐르지 않기 위해, 남은 자는 기억과 반성으로 이어 나가야 한다. 결국 '사라짐의 지혜'는 잊지 않으면서도 흘려보내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예술이 바로 그런 일을 도맡고 있다. 소리는 연주되는 순간 사라지고, 빛은 비추는 순간 사라지지만, 그 여운만큼은 우리 안에 온전히 머물게 된다. 인간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라짐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느끼고, 서로의 시간을 견디게 마련이다. 이름을 다시 부르고, 목소리를 다시 듣고, 침묵의 틈에 새삼 귀를 기울이는 일. 그것이 '작별하지 않는다'는 말의 궁극이자 진실이 아닐까.
죽음이 아니라 사라짐, 그 사라짐을 잊음이 아니라 이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기억을 흘려보내지 않되, 그 안에 갇히지 않는 것이 이 소설이 가르쳐주는 미덕이자 기억의 윤리다. 그런 한, 예술은 그 무엇과도 결코 작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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