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경 시인·대구문인협회 자문위원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 시월의 마지막 밤을'.
1년 12달 중 저마다 기억나는 밤이 어찌 없을까만은 가수 이용은 특별히 시월을 노래한다. 신문·TV에서도 특집을 엮기 바쁘고, 아내는 이날을 중년 여자들의 국경일이라 호들갑을 떤다. 누가 뭐래도 이 시간만큼은 저마다의 시월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재생 반복으로 아무리 들어도 지루하지 않는 게 한국의 대표 발라드지만 이용의 '잊혀진 계절'은 우리의 감성을 촉촉이 자극한다.
시월의 마지막 날 아침에 일어나서 하늘을 보고 AI 스피커에 날씨를 물으니 오전에는 날씨가 쾌청하다 한다. 하중도의 '2025년 대구 정원 박물관'을 찾아 나서면서 대학 동문이 만든 '솟대 정원'을 보겠다 하니 '어제 철거를 했습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늘 무계획적으로 여기저기 감정이 이끄는 대로 다니는 버릇이 오늘도 문제를 만든 셈이다.
과연 처음 가보는 하중도에 도착하니 모두 철거하고 늦게 전을 거두는 몇 팀만이 보였다. 행사 뒤의 쓸쓸함 뒤로 하늘의 흰 구름만 무심히 흐르고 있었다. 동행도 없이 혼자 걸어서 코스모스 밭을 둘러본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돌아오는 걸음은 오히려 가벼웠다. 철거 후의 쓸쓸한 시월의 풍경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운 좋게도 어젯밤에 전야제를 치렀다. KBS교향악단의 819회 정기연주회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심취되어 자정을 넘기고 잠을 설쳤다. 지휘자인 캐나다 토론토 심포니를 이끌며 세계적 명성을 쌓은 피터 운지인(Peter Oundjian)과 떠오르는 신예 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Randail Goosby)가 함께 꾸민 차이콥스키 특유의 '마음 속 눈물'을 담은 선율이 화려하지만 슬픈 느낌을 준 최고의 연주였다. 마치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시월의 마지막 밤의 전야제로 안성맞춤인 걸 KBS도 알고 장단을 쳐준 것 같다.
그에 못지않게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이 노래의 다른 서사는 듣지 않아도 될 듯하다. 감정이 무딘 필자라 가슴 아프게 헤어진 경험은 없지만 떠나지 않은 여인이 떠난 것으로 착각에 빠지고 만다.
늦은 밤까지 국경일을 치르느라 귀가를 못한 아내를 기다리며 나 또한 시월 마지막 날의 상념에 젖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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