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전 계명대 교수, '한국식물생태보감' 저자>
국토가 좁으니 온갖 개발의 니즈는 불가피하다. 그렇다 치더라도 정도껏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다. 더욱이 우리는 지금 생물다양성 보존, 탄소중립이란 말 잔치로 허비할 시간조차 없는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라는 마지막 순간에 살고 있다.
그런데 헌법 제35조 환경권과 환경보전의 의무란 헌법 정신에 반하는 사태가 팔현습지에서 일어나고 있다. 금호강 팔현습지 일대에 들어설 1.5㎞ 산책로 건설을 막아야 할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청이 그 일을 주도하고 있다.
팔현습지는 대구 달구벌을 통과하는 금호강 물이 잠시 쉬며 한숨 돌리는 곳이다. 그래서 온갖 야생동식물의 거처가 된 지도 꽤 오래다. 태곳적부터 떡하니 버텨준 퇴적암 하식애(가파른 하천 절벽) 덕택이다. 여태껏 사람이 다가선 적이 없던 무척 후미진 가파른 벼랑이다. 이런 곳은 운석 충돌이나 기후변화와 같은 지구 생물다양성 궤멸 시대가 닥치면 몸집 작은 생물들이 피난처로 삼는 크립틱 헤비테트(Cryptic Habitat) 이를테면 '숨은서식처'이다.
국토가 좁은 우리 사정에서 이런 하식애는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한 사실상의 최후 보루이다. 그런데 하식애 벼랑을 관통하는 탐방 보도교 건설이 2018년 이후로 유행가처럼 전국적으로 번졌다. 서글프게도 그 선봉에 환경부가 있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환경부의 책무는 맑고 아름다운 국토를 보전하는 일이다. 서둘러야 할 '숨은서식처 목록' 즉 국가 중요 서식처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안중에도 없고,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청이 팔현습지 보도교 건설을 재촉하고 있으니, 어안이 벙벙하다.
팔현습지 보도교 건설은 처음부터 불법이거나 편법이다. 팔현습지 하식애 강바닥에서 조사했다는 현장 식생 조사표는 달랑 한 장뿐이었다. 이 또한 속이 빈 그리고 금도를 넘는 비논리의 쭉정이였다. 지난 2월 25일에 있었던 '금호강 팔현습지 물길 식물 및 식생조사 결과 발표'에서 밝혀진 엄연한 사실이다.
한강 밤섬처럼 인구 밀집 도시에서 야생에게 땅을 양보하는 것은 남는 장사이다. 밤섬은 1998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인간 없는 세상, 철새와 들짐승들의 땅이 되고, 마침내 서울시는 전 세계를 향해 "도심의 람사르습지"라고 자랑한다. '비(非)사용의 시장가치 극대화'를 보여주는 지점이다. 이는 곧 람사르협약이나 생물다양성협약과 같은 인류 다짐의 실천이다.
환경부 낙동강유역청이 내놓은 팔현습지 탐방 보도교 설계 도면에는 언덕배기 인터불고호텔에서 하식애를 통과해 팔현습지 바닥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보인다. 무척 후미진 팔현습지 안방 깊숙이 파고드는 형국이다. 이재명 정부의 환경부 낙동강유역청은 국가보호습지로의 지정을 서둘러야 할 판인데, 되레 오래된 자연사와 문화사의 스토리텔링을 뭉개려 든다. 한 선량한 시민과학자는 "법적 보호종 22종을 포함해 총 80여 종의 새들이 사는 에덴동산"이란 증거를 갖고 있다. 어찢 팔현습지를 지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종원<전 계명대 교수, '한국식물생태보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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