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대구는 ‘육개장의 고장’ 손꼽혀와
피란민 정착 속 탄생한 ‘국 따로, 밥 따로’의 문화
한 번 맛보면 계속 손가는 ‘달큰칼칼함’의 비밀은?
대구에 처음 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 고개를 갸웃하는 음식이 있다. 바로 '따로국밥'이다.
대체 뭘 따로 먹는다는 걸까? 알고 보면 소고기가 푹 우러난 뜨끈한 국물은 뚝배기에, 흰 쌀밥은 공기에 담겨 따로 나온다. 먹는 방식은 온전히 손님 몫이다. 밥을 말아 먹든, 따로 떠먹든 입맛 가는 대로 즐기면 그만이다. 투박하지만 정직하고 담백한 대구시민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긴 한 그릇이다.
소고기가 듬뿍 들어간 대구 10미 '따로국밥'.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 대구만의 기후와 역사가 만들어낸 따로국밥
대구 따로국밥은 대구만의 기후와 역사가 더해져 탄생한 음식이다. 대구는 여름이면 숨이 턱 막히게 덥고, 겨울이면 손끝이 얼어붙을 만큼 춥다. 땀을 내고 몸을 데워주는 고추기름의 얼큰함은 이런 대구의 날씨와 찰떡궁합이었다. 1929년 종합잡지 '별건곡'에서도 이미 "대구가 육개장의 고장"이라 소개할 만큼, 매콤한 국물 문화는 오래전부터 이 지역의 상징이었다.
1946년, 한일극장 공터 나무시장에 국일식당이 문을 열며 대구 국밥 문화는 본격적인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사골과 사태를 밤새도록 고아 우려낸 육수에 대파와 무를 넣고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을 듬뿍 넣어 깔끔하고 개운하면서도 매콤한 국밥을 만들어낸 것. 당시엔 국과 밥을 섞어내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6·25전쟁 때 전국에서 몰려온 피란민들 중에는 밥을 말아 먹는 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자연스레 "국 따로, 밥 따로"를 찾는 손님이 늘었다. 이 주문 방식 자체가 하나의 이름으로 굳혀지며 오늘의 '따로국밥' 상차림이 생겼다.
김영모(69) 벙글벙글식당 대표의 집안 역시 60여 년째 대구에서 따로국밥을 지켜오고 있다. 대구백화점 남문 옆에서 시작해 한일장 인근을 거쳐, 지금은 경북대병원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김 대표의 기억 속 따로국밥은 지금처럼 누구나 편하게 즐기던 서민 음식은 아니었다. 그는 "지금이야 다들 편하게 먹지만, 1980년대만 해도 아무나 못 먹었다"며 "그 당시 따로국밥 한 그릇에 700원 했는데, 커피 한 잔이 300원 하던 시절이었다"라며 웃었다. 당시에는 중국집보다도 비쌀 정도였고, 그래서 "돈 있는 사람은 따로, 돈 없는 사람은 밥 말아 나오는 국밥을 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대구 10미 '따로국밥' 한상.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 "서울엔 이 맛 없다" 대구식 육개장의 자존심
벙글벙글식당의 따로국밥은 크게 육개장과 선지국 두 가지로 나뉜다. 선지국으로 출발한 집도 있지만, 벙글벙글식당은 육개장으로 시작했다. 집마다 특징이 다 다르다는 것도 따로국밥을 먹는 재미다.
김 대표가 말하는 대구식 육개장만의 가장 큰 특징은 '달큰함'이다. 이 달큰한 풍미가 가장 잘 살아나는 시기는 10월부터다. 그는 "대구 육개장은 파가 많이 들어가는데, 파가 겨울에 유난히 달다. 국에 설탕을 넣었냐고 묻는 손님이 있을 정도"라며 "무도 달아지는 계절이라 맛이 한층 깊다"고 설명했다.
전국 각지, 특히 서울에서 찾아온 손님들이 "서울엔 이 맛이 없다"며 일부러 발걸음을 하는 이유도 이 '달큰한 칼칼함' 때문이다. 서울 육개장에는 당면이나 고사리 대신 다른 재료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대구식은 파와 무가 국물의 성격을 단단히 잡아준다. 기호에 따라 다진 마늘을 넣어 조절할 수도 있다.
세월이 흐르며 바뀐 것도 있다. 예전에는 논밭을 갈던 일소를 썼지만 지금은 모두 사육 소를 쓰면서 고기의 결, 국물의 구수함이 달라졌다고 김 대표는 아쉬움을 숨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비법요? 큰 비법은 없어요. 좋은 재료를 아끼지 않고, 정성 들여 푹 고우는 거. 그게 다예요."
대구사람에게 따로국밥은 단순한 메뉴가 아니다. 외지로 떠난 사람들도 고향에 내려오면 반드시 챙겨 먹고 가는 음식이다. 그는 "외지에 사는 사람도 명절만 되면 꼭 와서 먹고 간다"며 "딸이 입덧할 때 이 국밥이 생각난다 해서 부모가 사서 보내주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요즘은 젊은 손님이 예전만큼 많지 않아 아쉬움도 있지만, 그럼에도 오랜 세월 지켜온 맛에 대해 김 대표는 자부심을 갖는다. 그는 "요즘 애들은 달고, 짜고, 맵고, 중독성 강한 것들을 좋아한다"며 "그래도 우리는 이 맛 그대로, 오래 가는 게 목표"라고 했다.
'대구 10미 시식단'으로 나선 칠레 출신 외국인 크리스티안씨, 대구 관남초 5학년 김도이 군, 경기도 출신 직장인 서영현씨(사진 왼쪽부터)가 따로국밥을 맛본 후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 '3인 3맛'이 말하는 따로국밥
'대구 10미 시식단'으로 나선 경기도 출신 직장인 서영현씨, 칠레 출신 외국인 크리스티안씨, 대구 관남초 5학년 김도이 군은 따로국밥을 각자의 언어로 표현했다.
영현씨는 먼저 국물의 무향을 짚었다. 그는 "건더기엔 무가 많지 않은데, 국물에서 깊게 느껴진다"며 "분명 비법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영현씨는 짭짤한 국물과 밥의 전분이 만나 부드럽게 스며드는 조화를 매력으로 꼽았다. 선지가 국물과 특히 잘 어울린다는 평도 덧붙였다. 마늘을 후첨하는 방식도 흥미롭게 여겼다.
크리스티안씨는 대구식 육개장의 달큰한 매운맛에 매료됐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그는 따로국밥 한 숟갈에서 고향의 '향수'까지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정말 맛있다. 선지도 아주 부드럽고 입안에서 거의 녹아 없어지는 느낌"이라며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수프가 떠올라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생각났다"고 했다. 또 "전혀 맵지 않아 먹기 쉽다"며 "누구나 좋아할 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도이군은 "야채가 많지만 맛있다"라며 "매운 거 못 먹는 친구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 집에서 즐기는 따로국밥 레시피
식당에서 먹는 깊은 맛을 그대로 내기는 어렵지만, 집에서도 비교적 간단하게 '대구식 따로국밥 느낌'을 낼 수 있다.
1. 재료 준비 : 사골, 소고기 양지, 무, 대파 듬뿍, 다진 마늘, 고춧가루, 국간장, 소금, 참기름, 후추 등
2. 육수 끓이기 : 피를 뺀 사골을 데쳐 냄부에서 사골국물을 우려낸다. 여기에 양지와 굵게 썬 무를 넣고 반 정도 익힌다.
3. 재료 손질 : 익은 양지를 건져내 먹기 좋게 썰어두고, 무는 나박썰기한다. 대파를 썰어 뜨거운 물에 데친다.
4. 재료 볶기 : 양지와 고춧가루, 참기름, 마늘, 국간장 등을 볼에 넣고 비빈 후, 참기름을 두른 냄비에 넣고 볶는다.
5. 국 끓이기 : 고추기름 색이 나오기 시작하면 미리 우려낸 사골 육수를 넣고, 무와 대파도 투하해 끓여낸다. 기호에 따라 간장과 소금 등으로 간을 조절하면 된다.
6. 따로국밥 스타일로 내기 : 그릇에 뜨거운 국을 듬뿍 담고, 밥은 별도의 공기에 담아 곁들인다. 김치·깍두기, 후첨할 다진 마늘, 후추를 곁들이면 식당 분위기가 난다.
※ 팁 : 따로국밥의 핵심은 '밥과 국이 따로 나온다'는 상차림 방식이다. 먹는 방법은 자유다. 말아 먹어도, 따로 떠먹어도 된다. 다만 원한다면 밥을 말지 말고 떠먹어보시라. 국물 본연의 맛을 끝까지 온전하게 즐길 수 있다.
서민지
디지털콘텐츠팀 서민지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