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 등 진보성향의 의원 31명이 공동 발의한 국가보안법 폐지법률안이 지난 4일 입법 예고됐다. 국회의 입법 예고 사이트에는 어제 오전 현재 8만2천여건의 의견이 달렸고, 상당수는 반대의견이었다. 우리나라는 휴전중인 분단국가다. 무엇보다 안보가 중요하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면 안보상황을 비롯해 사회적 합의 등 고려해야 할 사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민주당이 당론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행여 당론으로 결정해 의석수로 밀어부쳐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는 국보법 폐지 움직임이 상당히 구체화됐었다. 당시 여당이 폐지를 추진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다며 폐지를 권고했다. 민주화 과정에서 누적된 상처를 치유하자는 사회적 열망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국회는 폐지의 위험성을 무겁게 받아들였다. 북한의 군사력 강화와 핵 개발이 가속화되던 시기에, 체제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법적 안전장치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컸기 때문이다. 결국 폐지는 무산되고, 독소 조항을 손질하는 개정 논의로 선회했다.
현재의 안보 상황이 노무현 정부 때와 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남북은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전력은 지속적으로 고도화되고 있다. 북한의 대남 공작활동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국가안보의 최소 방벽 역할을 해온 법을 폐기하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다.
물론 국보법에는 표현과 양심의 자유와 반하는 문제 조항이 있다. 또 애매한 기준으로 과도한 해석과 국가권력의 남용이 우려되는 조항도 존재한다. 제7조의 '찬양·고무·동조죄'와 10조의 '불고지죄(不告知罪)'가 대표적인 것들이다. 그렇다고 이런 조항들 때문에 국보법을 폐지하자는 것은 과한 주장이다. 이는 개정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폐지와 유지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보완·정비라는 균형적 접근이 필요하다.
국가안보를 다루는 법은 정권이나 국민정서의 일시적 흐름에 따라 쉽게 없애거나 덧칠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간첩죄, 잠입·탈출 등 국가안보의 핵심 조항은 반드시 필요하다. 국제정세가 불안정하고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상시화된 현실에서 법적 안전판을 무너뜨리는 행동은 신중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은 지켜져야 하지만, 대한민국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안전 역시 유지돼야 한다. 나라를 지키는 법은 시대의 요구에 맞춘 세련된 개정으로 더욱 튼튼해질 수 있다.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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