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전횡 더해 내부갈등 극심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의 난맥상
고질적인 인사 병폐 되풀이돼
차기 시장, 인사·조직개편 과제
문화 회복에 시민들 역할 중요
박주희 문화팀장
올해 대구 문화예술계 이슈의 한 축에는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이하 진흥원)이 있었다. 인사 전횡 논란으로 원장이 자진 사퇴하고 조직 내부 문제도 불거지는 등 난맥상이 이어지면서 지역 문화행정의 컨트롤 타워 기능 자체가 시험대에 올랐다. 이 상태로는 지역 문화예술의 진흥은커녕, 퇴행을 막기조차 버거울 정도다. 사실 필자는 진흥원장의 인사 전횡 보도를 처음 보도하면서 개인적으로 심적 힘듦이 적지 않았다. 일부 취재를 하고도 기사화하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과 함께, '진흥원이 이래서야 되겠는가'라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크고 작은 목소리 앞에 무력감도 교차하는 한 해였다.
진흥원 사태는 성급히 진행된 통합 과정에서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복잡한 고용 형태와 대우 문제가 내부 갈등으로 한껏 응축된 상황에서 원장의 편파적 인사 개입이 갈등의 불씨에 더 화력을 붙였다. 사실 조직 내부는 이미 구조적 난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내부 진통이 큰 실정이다. 이른바 '갑질 신고'가 빈번이 제기되고 녹취나 문서 위조가 이뤄지는 등 시급히 조정과 개선이 요구되는 현안이 산적해 있다. 지역 문화행정가들과 예술인들이 한 목소리로 '진흥원이 이래서야 지역 문화행정 정책이 바로 서겠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오래 지역에서 활동해 온 한 문화행정가는 '인사가 만사(萬事)'라는 오래된 경구로 이번 사태의 주된 원인을 일갈했다. "아무리 시스템, 시스템 해도 사람이 제일 중요하더라요."
지역 문화예술계는 선출직 단체장의 논공행상식 보은 인사나 낙하산 인사, 카르텔 같은 고질적인 병폐로 오래 찌들어왔고 씁쓸하게도 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관리감독 기관이자 수장 임명권을 가진 대구시도 책임을 피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긴 세월 겹겹이 쌓여온 문제를 일사천리로 해결하기가 쉽지 않고, 대구시장이 부재한 가운데 내년 6·3지방 선거 전까지 뾰족한 수를 내놓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차기 대구시장의 역할이 지역 문화예술계에 있어서는 더욱 무겁고 막중하다.
게다가 내년 대구시장 선거 이후 지역 주요 문화기관의 수장이 새로 선임될 예정이어서 지역 문화계에는 벌써부터 팽팽한 기류가 감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 시절, 출자·출연기관의 장 및 임원의 임기를 단체장의 임기와 일치시키는 특별 조례가 제정됐기 때문이다. 수장의 자질과 리더십은 기관의 운명을 크게 좌우한다. 기관장 공모 과정에서 각종 병폐의 개입 여지를 줄여나갈 임명권자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절실한 시점이다. 더욱이 차기 대구시장은 여러 기관이 통합돼 전문성 약화, 비효율성 등의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진흥원의 기능 및 조직 재편 방향을 설정하는 행정적 판단도 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된다.
이미 한 번 후퇴한 문화 생태계는 원래의 궤도로 되돌리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더이상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가 난맥상 속에 표류하거나 퇴행해서는 안 된다.
궁극적으로 이 변화의 시작은 시민의 자각에서 비롯된다. 내년 6·3지방선거에서는 투표권을 가진 시민들이 문화정책에 대해서도 함께 묻고 관심을 기울여야만, 비로소 정치적 입김과 줄세우기를 탈피한 인재 선임과 미래지향적인 비전 논의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깨어 있는 시민의 자각 없이는 정치인도 바뀌지 않는다.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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