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관공공사에서 개최한 세미나 직후 이런저런 담소를 하다 서울에서 온 발표자의 말에 살짝 꼽혔다. 그는 박물관 쪽 전문가인데, 세종시에 '국립박물관 단지'가 들어선다고 알려줬다. 나는 세종시가 행정수도인데 무슨 박물관 단지냐고 되물었지만, 그렇단다. 검색해보니 내년 예산으로 이미 492억원이 배정됐다. 국립대구박물관에 수십억이라도 투자했다는 소리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세종에 박물관 단지라? 그런 건 차라리 경주가 어울릴 것 같은데...고개를 갸웃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 교수님과 차를 마셨다. 그간의 근황을 물어봤다. 한동안 '산학연구원'이란 곳에 파견 갔었다고 했다. 서울 무슨 동네에 있냐고 물었다. 답이 세종시란다. 역시 고개가 갸웃했다. 그게 왜 세종시에 있냐? 국무조정실 산하기관이라 그렇다고 했다. 170명 정도의 석박사 고급 인력이 상주한다. 검색해보니 세종시에는 공공기관 공기업 연구소가 즐비하다. 국무조정실 산하만 해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조세재정연구원, KDI국제정책대학원, 한국교통연구원, 국토연구원 등 열댓개나 된다. '저런 기관이 대구에 한 두개라도 있으면 고급 일자리를 창출할텐데...'
세종시는 지금 엄청난 국가 에너지를 집중하는 중이다. 이미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해 23개의 중앙행정부처가 옮겨가 있고, 별도의 부처 산하기관 22개, 국책기관 16개, 공공기관 10개도 포진해 있다. 여기다 이재명 대통령은 '행정수도 세종의 완성'까지 공약했다. 이 대통령은 "퇴임은 세종에서 할 수도 있겠다"고 했다. 용산에서 청와대로 들어가지만, 대통령 집무실 세종시 건립을 염두에 둔 언급이다. 실제로 세종시가 지역구인 김종민 의원에 따르면 내년도 세종시 국비 예산 1조7천억원중 눈길 가는 인프라가 즐비하다. 세종 국회의사당 965억원, 세종 대통령집무실 240억원에다, 세종~청주 고속도로 1천23억원, 세종~안성 고속도로 278억원 등등. 심지어 국립민속박물관도 세종시로 옮길 모양인지 154억원이 배정됐다.
종종 서울로 오갈 때마다 느끼는 점인데 경부고속도로 충남 천안 부근이 꽤 막힌다. 그게 알고 보니 천안 분기점에서 세종시로 가는 병목 때문이었다. 서울과 세종은 147km쯤 된다. 대구~세종 170km이다. 차로 달리다 보면 딴 세상이다. 서울~천안은 하나의 벨트가 된 지 오래고, 이제 세종까지 KTX 덕에 점점 출퇴근 거리화되고 있다. 기업마저 몰리고 두 도시 간 공간 거리는 점점 단축된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국토균형발전을 외치지만, 아무래도 뭔가 잘못 돌아가는 느낌이다. 세종시 주변에 촘촘이 고속도로를 까는 것과는 반대로 동해안 고속도로는 수십년째 미완성이고, 사드 배치 반대급부로 놓아주겠다는 대구~성주 고속도로는 하염없이 미적댄다. 인구 234만의 대구 국립근대미술관은 하세월 말만 무성한데, 인구 39만명의 세종특별자치시에는 알짜 문화 인프라들을 슬그머니 옮기고 있다. 세종시에 정책결정권자들이 포진해 있는 탓일 게다.
수도권 초집중의 거대 도시 서울을 마주하기도 지방은 벅찬데 이젠 서울 복제도시 세종시 공룡까지 등장하는 것일까. 꼴랑 해양수산부 하나 부산으로 옮기는데도 엄청난 저항이 있다. 이대로면 세종특별자치시가 대구나 부산을 넘어서는 건 시간문제다. 대한민국은 세종~서울 벨트와 그를 제외한 지역으로 양분되고 있다. 대한민국 불균형 발전은 영구 고착인가. 머리가 띵하다. 백지 상태에 놓고 심도 있는 고민과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세종시는 지금 서울 복제중
행정수도에 국립박물관단지까지
정책결정권자들 포진한 잇점
국토는 서울~세종 벨트로 양분
세종은 부산 대구 넘어설 것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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