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곤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율하연합가정의학과 원장
필자가 응급실 인턴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할머니 한분이 숨을 헐떡이며 아들의 부축을 받고 응급실에 방문했다. 대화도 힘들 정도로 숨을 몰아쉬며 힘들어하는 모습에 바로 안쪽에 따로 마련된 침상이 배정되어 산소공급을 시작했고 보호자에게 병력청취를 하며 산소포화도 확인을 위한 동맥혈검사가 진행되었다. 급하다고 어림짐작으로 섣불리 손을 댔다가는 선무당 사람 잡는 격이 될 수 있기에 질병이나 증상의 원인을 파악한 뒤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 것은 진료의 기본원칙 중 하나이다. 검사결과를 확인해야 치료방향을 정할 수 있기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의료진들이 다른 환자분들을 돌보는 동안 사건이 발생했다. 보호자인 아들이 환자가 방치되었다 생각해서 담당의사인 응급의학과 전공의 선생님에게 컴플레인을 하는데 큰소리를 지르고 위협적으로 다가서는 등 일반적인 항의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전공의 선생은 검사가 진행 중이고 결과를 기다려야함을 차분히 설명했지만 보호자는 막무가내로 고함을 지르고 위협적인 행동을 지속했고 보다 못해 중간에 끼어들어 보호자를 진정시켜 보고자 했다. 진정하시고 조금만 기다려주시란 말에 보호자는 욕설을 하며 '너의 어머니 같으면 기다리겠냐!?'라고 되물었고 '네, 저라면 기다립니다'하고 답하는 순간 다시 욕설이 돌아오고 강하게 밀쳐지면서 멱살을 잡혔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옆에 있던 응급실 보안요원이 보호자를 뜯어말렸고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잠시 뒤 경찰이 왔고 어느새 보호자는 자리를 피해 사라졌다. 그 뒤로 가슴이 벌렁거리고 욕을 들으며 멱살 잡히던 순간이 계속 떠올라 정신 차리고 일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사건진술을 위해 경찰서를 방문했고 담당 경찰관께서는 크게 다친 데도 없으니 좋게 그냥 넘어가자고 했다. 보호자의 태도를 떠올리면 이후 같은 행동을 할 것이 분명해보여 사건진행을 요청했고 경찰관은 상대가 사과하면 넘어가는 게 어떻겠냐고 다시 권유했다. 두 번이나 거듭된 권유에 레지던트 선생님과 필자에게 사과하면 넘어가겠다 했으나 이후 경찰에서 이번이 처음이 아닌 재범이고 사과도 거부했다는 연락이 왔다.
필자의 이야기를 읽고 '어머니가 아픈데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답답하고 절박한 심정을 필자도 십분 이해한다. 의사의 과실 없이 불가피하게 발생한 부작용, 후유증에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다.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억울함과 막막함에 필자도 안타까움을 느낀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라도 지켜야할 선이 있고 답답하고 안타까운 사정이 있다고 해서 잘못된 행동이 정당화 되거나 애먼 사람에게 책임을 물으며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서는 안된다. 사명감을 갖고 힘든 길을 가는 의사들은 지쳐서 떠나고 그 길을 선택하는 의사들도 줄어들고 있다. 오래 전부터 의료계에서는 응급실 의료진의 폭행 방지 및 무과실 의사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을 포함하여 의료의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한 법과 정책들을 제안하고 건의했으나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그 결과 지금 대한민국의 필수의료와 응급의료는 백척간두에 서 있다. 당장 와 닿지 않는다고 무관심하게 손 놓고 있다가는 언젠가 나와 가족들이 아플 때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힘든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지금이라도 국민들이 심각한 의료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면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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