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사망 3년여 만에 얻은 CCTV
하루 온종일 분석에 1년여간 매달려
"움직이는 아들 모습 반가워 울기도
언론 제보자, 자료 모두 공개해 주길"
지난 2020년 10월 쿠팡에서 일하다 숨진 고 장덕준씨의 어머니 박미숙씨가 아들이 쿠팡에서 일하며 살이 많이 빠졌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지난 2020년 10월 쿠팡에서 일하다 숨진 고 장덕준씨의 어머니 박미숙씨가 자신의 휴대폰에 담긴 아들의 사진을 보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최근 아들의 죽음과 관련해 다양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우리 가족은 또다시 무너졌습니다. 내가 모르는 진실이 아직 남아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속은 더 시커멓게 타들어 갑니다."
지난 7일 오전 대구 수성구 한 카페에서 만난 고(故) 장덕준씨 모친 박미숙(57)씨. 박씨의 삶은 6년 전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멈춰섰다. 2020년 10월 경북 칠곡에 있는 쿠팡물류센터에서 근무를 마치고 귀가한 아들이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당시를 여전히 잊지 못했다. "애지중지하던 자식이 그렇게 떠났는데 어떻게 일상생활이 가능하겠냐"는 박씨는 아들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세상을 등진 후 수년째 진실 규명에만 매달려 왔다.
◆아들의 죽음이 '과로사'?
박씨가 처음 아들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품은 건 장례식이 막 치러진 때였다. 그전까진 '과로사'가 아니라 운이 없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줄만 알았다. 하지만, 아들의 직장 동료들에게 근무 당시 상황을 묻는 과정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박씨는 "아들이 동료들에게 사망 당일 근무 중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매스껍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한다"며 "너무 힘들게 일했다는 말이 계속 나오니 나도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이어 "이후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2020년 7월 발족)와 연락이 닿아 아들 죽음이 '과로사의 전형적인 증상'이라는 설명을 들었다"며 "그때서야 아들이 사망한 경위를 정확히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때부터 박씨는 아들의 죽음과 관련해 산업재해 인정을 받고자 온 힘을 쏟았다. 하지만 힘든 과정의 연속이었다. 당시 쿠팡 측에 CCTV를 요청했지만 "없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렇다할 증거가 없다 보니 근로복지공단과 노동청 등을 대상으로 거리 집회를 수차례 진행했다. 언론에도 이 문제를 제보하며 사안의 심각성을 알렸다. 박씨는 "쿠팡은 언론에 산재 신청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요청한 자료는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며 "아들이 숨진 지 25일이나 지나서야 겨우 산재 신청을 했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고 토로했다.
2021년 2월9일, 결국 아들의 사망이 산업재해로 인정됐다. 당시 근로복지공단 등이 작성한 업무상질병판정서엔 출고 지원 업무를 맡은 장덕준씨가 일주일에 5~6일은 오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4시까지 근무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근무 중 4~5㎏가량의 박스와 포장 부자재를 하루 80~100회 옮겼고, 20~30㎏에 달하는 물품을 '수동 자키'로 하루 20~40회 이동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업무는 사망 전 약 3개월간 주당 평균 58시간18분 이뤄졌다. 사망 직전 일주일간은 근무시간이 62시간에 달했다.
장덕준 씨의 유골이 안치된 납골당. 박미숙씨 제공
◆"돈 모아 동생과 해외여행 가던 싹싹한 아들"
박씨 가족은 깊은 슬픔 속에 머물러 있었다. 집안의 맏이였던 덕준씨는 유달리 싹싹하고 책임감이 강한 아들이었다. 부모에게 항상 살가웠고, 사고 한 번 쳐본 적이 없는 반듯한 아들이었다. 두 살 터울의 남동생과 14살 터울의 막내 여동생도 늘 챙겼다. 집에 손을 벌리기 싫다며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으로 동생들과 해외여행까지 다녀왔다.
하지만, 사고 이후 단란했던 가족의 풍경은 달라졌다. 남동생은 충격에 말문을 닫았고, 여동생도 장기간 아파하다 지난해 말부터 심리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박씨는 "사고 직후엔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만 매달려 있었다. 그러다 보니 둘째와 셋째가 받은 상처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것 같아 넘 미안하다"고 했다
2024년 1월, 아들의 근무 영상이 담긴 CCTV를 확보한 박씨는 또다시 무너졌다. 생업을 접고, 약 1년간 200시간에 달하는 분량의 영상을 일일이 분석한 결과, 아들의 일상은 '로봇'이나 진배없었다. 체중이 줄어 매마른 모습에 몇 번이나 눈시울이 붉혔다. 앞서 유족들이 쿠팡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덕준씨의 사망을 과로사로 볼 수 없으며 급성 심근경색은 과도한 업무가 아닌 무리한 체중 감량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의 주장이 나왔던 터라 더 신경이 쓰였다. 박씨는 "눈을 떠서 감을 때까지 CCTV 분석에만 매달렸다. 화면에 나온 아들의 발걸음 수를 하나하나 세고, 서로 다른 장소에서 촬영된 영상을 대조해 이동거리를 계산한 뒤 근무 기간 동안 몇 보를 걸었는지 계산해 보니 적어도 3만보는 되더라"며 "처음엔 눈물밖에 안 나왔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지 3년 만에 영상 속에서나마 다시 움직이는 모습을 본다는 게 좋기도 했지만, 어떤 날은 화면을 보다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기도 했다"고 했다.
◆"유가족 요청 있을 땐 CCTV 공개돼야"
최근 장덕준씨의 사망사건을 경찰이 다시 조사하기로 하면서 박씨의 삶은 다시 분주해졌다. 하지만, 좋은 기회가 생긴 것과 달리 기대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간 쿠팡의 사과와 배상, 재발방지대책을 촉구하는 집회들과 중대재해노동자 추모제 행사 등에 얼굴을 비쳤지만 바뀐 건 없어서다. 그저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는 것. 그자체로 충분했다. 박씨는 "2020년 국정감사 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진상을 밝혀 달라고 빌었다. 그때는 뭔가 달라질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이후 실제 바뀐 것은 없었다. 당시, 오히려 쿠팡 관계자들이 해명 자료를 들고 국회의원들을 만나러 다녔다는 소문만 파다하게 들렸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고용노동부 장관을 직접 만나게 되면 유가족의 요청이 있을 경우 CCTV 영상을 공개해 달라고 반드시 요청하고 싶다"고 했다.
박씨는 최근 김범석 쿠팡 의장이 '그(장덕준씨)가 열심히 일했다는 기록이 남지 않도록 확실히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메시지가 세상에 공개된 것과 관련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그 내용을 언론에 폭로한 쿠팡 전직 최고 개인정보 보호 책임자와 꼭 만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박씨는 "언론에 미끼를 던지듯 하나씩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는데, 공개된 내용을 보면 산재 신청 초기부터 이상하다고 느꼈던 점들이 그대로 맞아 떨어진다"며 "제보자를 직접 만나 자료를 모두 공개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박씨는 더는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는 이들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그는 "아들 사망 이후 전태일 열사의 책을 읽고 야간 노동의 위험성을 파고들게 된 것도, 아들의 동료들이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서였다"며 "아들의 사망 사고 이후에도 쿠팡에서 또 다른 사고 소식이 들릴 때마다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조윤화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