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 근대골목 도시재생 주도한 권상구 전문가 인터뷰
조선경무부 고문관 미국인 여성 앨리스 패리시 영향
미 군정기 문서에 Womens’s police 라고 남아 있어
1947년 경찰관 현원조사표(오른쪽)와 감찰서 관할구역 일람표. 감찰서 관할구역 일람표에는 대구, 김천, 안동, 포항에 설치된 제1~4구 감찰서를 확인할 수 있다. '대구여자경찰서'는 제1구 감찰서 산하에 있다. <권상구 전문가 제공>
"여자경찰서는 여성의 사회적 활동과 역할 신장을 이끈 시작점이었다."
대구 중구 근대골목의 도시재생을 주도해온 권상구 근대골목 전문가는 대구여자경찰서의 의미를 단순한 행정조직 이상의 역사적 가치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대구여자경찰서는 단순히 치안 보조기능을 수행한 조직이 아니라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공적 역할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올린 상징적 제도이자 공간"이라며 "대구 근대 도시사의 맥락에서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군정기 경무부 역사서술 문서를 보면 '대구여자경찰서'는 조선경무부 아래 경상북도 경찰청(제5관구 경찰청) 직속으로 표기돼 있다. 당시에 여성만으로 구성된 별도 조직이 공식 체계화해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948년 6월1일자 조선경무부 고문관 명단에 여자경찰을 뜻하는 Womens's police Bureau라고 남아 있다. <권상구 전문가 제공>
그렇다면 1940년대, 여자경찰서는 어떻게 출범할 수 있었을까. 당시 우리나라 여성의 인권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것은 물론 사회 진출 등 활동 자체가 오늘날과는 달리 극도로 제한적이었다.
권 전문가는 여자경찰제도 도입 배경에 미국인 여성 앨리스 패리시(Alice A. Parrish)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앨리스 패리시는 1948년 6월 1일자 조선경무부 고문관 명단에 여성경찰국 고문관으로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권 전문가는 "미국 워싱턴 출신 패리시는 서울에 살면서 자신의 경찰 실무경험과 법학교육, 콜럼버스 대학에서의 경찰 범죄학 연구 경력을 바탕으로 1947~1948년 한국 여성경찰대 조직과 훈련과정에서 감독 및 특별고문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단순한 자문을 넘어 조직의 틀과 교육체계 설계에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여자경찰서의 영향은 이후 여성군대 조직으로도 이어졌다. 여성군단(WAC) 부대가 한국에 직접 배치된 적은 없지만, 1950년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창설된 한국군 여성군단(ROK Army WAC)은 1947년 한국 국립경찰훈련에 참여했던 여성 경찰 인력을 중심으로 빠르게 설립됐다. 1948년 여성군단으로 복귀해 정규군으로 남아있던 패리시 대위가 남긴 제도적 기반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권 전문가는 "미국의 엘리트 여성이 한국에 와서 자국 수준에 맞는 제도를 만들겠다는 사명감을 가졌던 것 같다"며 "당시 한국 사회를 일방적으로 낮게만 본 것이 아니라, 평행적인 시각으로 제도를 이식하려 한 흔적이 느껴진다"고 평했다.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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