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 영국 보수당은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에 대패했다. 당시 총선에서 보수당은 165석을 얻는데 그쳤고, 노동당은 418석을 확보했다. 궤멸적 패배에 보수당은 정신을 차렸을까. 아니다. 온건파는 떠나고 강성 지지층만 남았다. 보수당 지도부는 남은 지지층이라도 붙잡기 위해 더 '오른쪽'으로 치우쳤고, 중도층은 보수당을 아예 외면했다. 내부 분열도 극심했다. 반면 노동당은 보수의 전유물이었던 시장경제를 흡수하는 유연함을 보여줬다. 보수당이 다시 일어선 것은 2005년이다. 데이비드 캐머런이 등장해 환경, 복지 등 진보의 의제들을 수용하면서 나쁜 보수당과 낡은 권위주의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보수당은 2010년 재집권했다. 폭망 후 재건에 걸린 시간이 무려 13년이다.
지금 국민의힘은 영국 보수당의 '잃어버린 13년'과 유사한 길을 걷고 있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연거푸 졌지만,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분열의 강도는 세지고 있고, 낡은 시대정신을 고집하고 있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발언도 계속 나오고 있다. 보수 유튜버 출신의 한 인사는 당사에 전두환, 윤석열 전 대통령의 사진을 걸자고 했다. 합리적 보수가 들어설 자리를 스스로 걷어차는 꼴이다. 반공과 산업화라는 과거 유산에만 매달린 채 새로운 시대적 과제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이 대한민국을 망친다'는 소리만 주구장창 해대고 있다. 장동혁 대표가 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재명 정부의 지난 8개월은 해체와 파괴, 붕괴와 추락의 시간이었다"고 주장한 것도 상대를 악마화하는 일종의 '공포 마케팅'이다. 국민의힘 재건에 걸리는 시간은 과연 어느정도일까.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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