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과밀, 경북은 공백…한 권역 안의 두 의료 현실
의무 아닌 매력의 싸움, 보상·생활여건이 발길 가른다
증원 이후가 본게임…대학·지자체 준비가 성패 좌우
최근 대구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 구급차가 대기한 가운데 의료진이 병원 건물로 들어가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논의 속에서도 지역 의료 현장은 여전히 인력과 병상 부족, 응급의료 공백 문제를 안고 있다.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9일 정부가 향후 5년간(2027년~2031년) 의대 정원 규모를 확정하자, 대구경북(TK) 의료계는 급하게 다시 계산기를 집어 들었다. 현재로선 늘어난 숫자가 곧바로 병실과 응급실의 숨통을 트여줄 것이란 기대는 크지 않다. 안동·영주·문경에서 울진·영덕까지 이어진 경북 의료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고, 환자들의 대구 도심 대형병원 쏠림현상은 더 뚜렷해질 것으로 여겨서다. 지역 의료계는 이제 단순 인력 배치가 아니라 '사람을 머물게 하는 정착'이란 과제와 맞닥뜨리게 됐다.
9일 대구의 상급종합병원 교수들의 말을 종합하면, TK 의료 지형은 한 도시 안에서도 두개의 얼굴이 비친다. 대구 도심 병원은 중증 환자가 밀려 병상이 부족하고, 경북 북부권 응급실은 전문의 한 명이 빠지면 운영자체가 흔들린다. 포항·경주의 분만실 축소, 김천·상주의 소아 진료 공백은 해마다 반복되는 풍경이다. 의료 접근성 격차가 생활권 격차로 번지는 구조다.
새로 도입될 지역의사제도는 이 같은 불균형을 바로잡겠다는 시도다. 일정 기간 지역 근무를 조건으로 학비·생활비를 지원하고, 경력 관리까지 묶어 의사를 지역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현장에선 "의무보다 매력이 먼저"라고 아우성이다. 근무 강도와 보상, 자녀 교육, 배우자 일자리 같은 생활 여건이 바뀌지 않으면 10년 뒤 또 이탈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병원의 준비 속도는 성패를 가를 중대변수다. 경북대·영남대·계명대 의대는 교수 충원과 실습 병상 확대라는 이중 과제를 떠안게 됐다. 대구가톨릭대·동국대 경주캠퍼스 등은 수련 프로그램 개편이 시급하다. 영남의대의 A 보직 교수는 "학생이 늘수록 교육의 질이 관건이다. 지역 병원과의 협력 구조를 근본부터 다시 짜야 한다"고 했다.
지자체 역할은 한층 무거워졌다. 울릉·청송처럼 의료 접근성이 낮은 곳에선 의사 한 명이 곧 안전망이다. 경북도와 일부 시·군이 관사 제공, 배우자 취업 연계, 공공의료원 현대화를 검토하지만 재정 여력에 차이가 크다. 대구 인근 경산·칠곡은 비교적 유리한 반면, 북부 내륙과 동해안은 출발선이 다르다. 지역 경쟁력이 의료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시대가 된 것.
필수의료 보상 구조는 여전히 뇌관이다. 응급·외상·분만 분야의 낮은 수가가 개선되지 않으면 증원된 인력도 대구 도심의 인기 진료과로 쏠릴 가능성이 높다. 대구 달서구 한 외과 전문의는 "헌신만 요구하는 구조로는 지역의료가 지속될 수 없다"며 "제도는 사람을 보낼 수 있어도, 환경만이 사람을 남긴다"고 했다.
대구경북은 두 갈래 길에 서 있다. 의무 기간만 채우고 떠나는 순환 구조로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지역이 키운 의사가 다시 지역을 돌보는 선순환으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안동에서 울진까지 이어진 생활권에 믿을 만한 병원이 뿌리내리느냐는 향후 10년의 선택에 달렸다. 증원은 출발선일 뿐, 진짜 경쟁은 이제 시작됐다.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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