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혁 기자
경북 동해안 주민들에게 원자력발전소는 오랫동안 '애증'의 대상이었다. 울진에서 경주로 이어지는 동해안 라인에 빽빽하게 들어선 원전은 전국 26기 중 절반인 13기. 이를 두고 지역에서는 "전기는 우리가 만들고, 혜택은 서울이 가져간다"는 볼멘소리가 자주 나온다. 일본 후쿠시마와 같은 대규모 사고 위험에 대한 불안을 떠안고 사는 지역민들의 서러운 현실 인식이다. 하지만 세상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했던가.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전력 생산기지'의 위상이 180도 뒤바뀌고 있다. 바야흐로 전기가 국력이자 핵심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챗GPT로 촉발된 생성형 AI 열풍은 전례 없는 '전기 먹는 하마'들을 양산하고 있다. 고성능 AI 반도체를 품은 데이터센터 하나가 먹어 치우는 전력량은 중소도시 하나의 사용량과 맞먹는다. 전 세계 빅테크 기업들이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된 지금, 안정적이고 대규모 전력 공급이 가능한 인프라는 황금 자원이 됐다. 우리나라도 수도권은 이미 포화 상태니, 전기를 멀리 보낼 필요 없이 전기가 있는 곳으로 공장이 오는 것이 가장 확실한 해법이다.
여기에 경북 동해안만이 가진 강력한 무기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냉각수'다. 원자력 발전소가 바다 인근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핵분열 시 발생하는 엄청난 열을 식히기 위한 해수 확보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AI 데이터센터 역시 24시간 돌아가며 뿜어내는 고열을 잡는 것이 생존의 열쇠다.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들이 해저 데이터센터를 실험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포스텍 인공지능대학원 유환조 교수는 "데이터센터 전력의 약 40%가 오로지 열을 식히는 냉각에 쓰이는데, 바다를 낀 지역은 해수 냉각이나 심층수 활용이 가능하다"고 제안한다.
데이터센터 운영 비용의 상당 부분이 냉방에 투입되는 현실에서, 동해안의 풍부한 해수를 활용하면 내륙 데이터센터가 가질 수 없는 독보적인 효율성을 제공할 수 있다. 즉, 경북 동해안은 '풍부한 전력'이라는 엔진과 '효율적인 냉각'이라는 라디에이터를 동시에 갖춘, AI 산업을 위한 천혜의 요새인 셈이다.
과거 지역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고 여겨졌던 그 거대한 콘크리트 돔들과 푸른 바다가, 이제는 지역 소멸을 막고 미래 먹거리를 창출할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됐다. 위기가 기회로, 혐오 시설이 필수 기반 시설로 바뀐 이 거대한 흐름을 놓치지 말고 경북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삼아야 할 때다. 전력이 국력이고 바다가 경쟁력인 시대, 경북 동해안의 시간은 이제부터다.
전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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