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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만나는 우리동네 문화유산] 표지판도 없는 300년 누정…90대 부부가 지키는 영양 ‘취은당’

2026-02-13 11:19
경북 영양군 일월면 도곡리 구도실마을에 300년의 역사를 품은 취은당이 자리잡고 있다. 정운홍기자

경북 영양군 일월면 도곡리 구도실마을에 300년의 역사를 품은 '취은당'이 자리잡고 있다. 정운홍기자

영양군 향토문화유산 제86호인 취은당을 지키는 93세의 오내웅 어르신. 정운홍기자

영양군 향토문화유산 제86호인 취은당을 지키는 93세의 오내웅 어르신. 정운홍기자

경북 영양군 일월면 도곡리 구도실마을. 장군천 상류를 따라 산자락으로 접어들면 300년 가까운 세월을 품은 누정 하나가 숨어 있다. 영양군 향토문화유산 제86호 도곡리 취은당(醉隱堂)이다. 하지만 현장에는 '문화유산'임을 알리는 표지판이나 안내판은 없다.


이곳을 지키는 이는 93세의 오내웅 어르신이다. 부인과 함께 두 사람이 이곳을 돌본 지 오래다. 오 어르신은 "취은당은 우리 7대 조부께서 지으신 곳으로 문중에서도 큰 의미가 있는 곳이다. 지금도 하루하루 쓸고 닦고 물걸레질하며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취은당은 1712년 오삼달(1667~1744년)이 낙향해 만년을 보내기 위해 세운 누정으로 전해진다. 은거의 공간으로 시작했지만, 지역 사대부들이 오가며 시문을 주고받던 교유의 장이 됐다. 특히 1728년 이인좌의 난(무신란) 때는 오삼달이 영양에서 의병을 모아 진압에 앞장섰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산자락의 작은 정자 한 채가 선비들의 풍류의 공간이자 호국의 공간으로 자리한 셈이다.


건물은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로 팔작기와를 얹은 'ㅡ'자 형태를 띈다. 마루와 온돌방이 함께 놓이고 담장과 문이 둘러져 있다. 사방이 닫힌 구성은 겨울 바람이 매서운 경북 북부 산간의 기후를 의식한 흔적으로 읽힌다. 누정 앞쪽으로는 장군천이 흐른다. 찾아오는 이가 길을 헤맬 만한 '빈 자리'가 더 크게 보였다. 안내 표지나 문화재 번호 하나 없이 주변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오 어르신은 관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힘든 거는 따로 없다. 늘 물걸래질하고 쓸고 닦고…". 그러면서도 "아쉬운 건, 도 지정(경북도 지정 문화재)이라도 되면 좋겠다"며 "지금은 어찌 저찌 관리하고 있지만, 고치고 손볼 데가 있어도 문중 힘만으론 버겁다"고 했다.


문화유산은 '지정'만으로 보존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게 길을 열어주고, 설명을 붙여주고, 최소한의 관리체계를 갖춰야 비로소 지역의 자산이 된다. 취은당은 지금, 그 출발선에 서 있다. 현장을 지키는 이들이 90대가 된 지금도 빗자루를 놓지 않는 이유는 자부심과 책임감 때문이다.


장군천을 따라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이 누정은 화려하거나 크지 않다. 대신 묵묵히 300년을 지켜온 시간과, 그 시간을 버티게 한 사람의 손이 있다. '표지판 하나 없는 문화유산'이 더는 방치의 상징이 아니라, 영양의 역사와 삶을 보여주는 현장으로 자리 잡으려면 지자체의 안내시설 확충과 정기 점검, 보수 지원 같은 체계적 관리가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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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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