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논설위원
# 그레샴의 법칙=금화와 은화처럼 귀금속으로서의 가치가 서로 다른 화폐가 동일한 액면가의 화폐로 유통될 때 가치가 높은 금화는 사라지고 가치가 낮은 은화만 유통되는 현상이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는 말로 표현한다. 이 문구는 16세기 영국의 재무고문관 그레샴이 통화정책 개혁을 위해 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게 진언한 편지 속에 나오는 대목인데, 1858년 스코틀랜드 경제학자 마크로드가 '그레샴의 법칙'이라 명명했다. 구축(驅逐)은 몰아낸다는 뜻이다.
신용화폐가 정착된 오늘날, 통화시장에서의 그레샴의 법칙은 역사적 사실일 뿐이다. 하지만 정치 분야 등에 그레샴의 법칙을 대입하면 신통하게 맞아떨어진다. 작금 국민의힘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듯한 묘한 기류가 흐른다. 금화를 챙기려는 이기심이 화폐 유통시장을 왜곡하듯, 당 대표와 당권파, 극우 유튜버의 이기심과 자의적 언행이 보수 정당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 누가 양화, 누가 악화인가=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한동훈 전 대표와 김종혁 전 최고위원을 제명하고, 배현진 의원에게 1년간 당원권을 정지하는 중징계 결정을 내렸다. 장동혁 대표의 정지(整地)작업? 당내 정적 제거 및 친한계 솎아내기로 비쳐서다. 김 전 최고위원의 징계 이유가 가당찮다. 당 대표는 자연인 인격체가 아닌 당원 개개인의 자유 의지의 총합이기 때문에 비판해선 안 된다나. 장 대표를 우상화하려는 북한식 전체주의 발상이 생경하고 놀랍다. 기실은 저열한 '입틀막' 아닌가.
친한계는 12·3 비상계엄에 반대하고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다. 반면, 장 대표는 "하나님의 계시"라며 계엄을 두둔하고 탄핵에도 반대했다. 한때 한동훈 참모였던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와 틀어진 계기도 탄핵에 대한 이견이 표출되면서다. 한덕수 전 총리 재판부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재판부는 잇달아 12·3 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어게인' 세력과의 단절을 머뭇거린다. 그러는 사이 유튜버 전한길·고성국씨는 이미 국힘의 막후 책사를 자처한다. 장 대표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23%로, 정청래 민주당 대표 36%에도 못 미쳤다(11~13일, 1천명, MBC-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 여론조사).
# '황교안의 길' 가나=뜬금없는 단식 돌입, '빈손' 종료. 장 대표와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단식은 시작과 끝이 데칼코마니다. 황 전 대표는 2020년 총선에서 "계파·외압·사천 없는 3무 공천"을 장담했지만, "막장 공천" 여론 속에 선거는 폭망했다. 유승민 전 의원을 공천 배제했고, 당내 '친황' 세력을 구축(構築)하려다 부메랑을 맞았다. 장 대표의 진퇴도 6·3 지방선거 공천과 성적이 가름할 것이다. 이정현 공관위원장의 계엄 옹호 이력이 공천 변수가 될지는 지켜볼 지점이다. 고성국씨가 제명을 요구한 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한 당의 처분도 공천의 풍향계다.
어쨌거나 장동혁의 명운과 지방선거의 향방, 국힘의 미래, 보수의 재건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지난주 한국갤럽 여론조사(10∼12일, 1천3명)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4%, 국민의힘 22%. 양당 격차가 더 벌어졌다. 일모도원(日暮途遠)의 형국이랄까. 민심은 멀어져가는데 평가도 박하다. "황교안 전 대표와 비슷한 결과일 것"(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장 대표 앞에 펼쳐질 시나리오가 자못 궁금하다. 논설위원
정적 제거·친한계 솎아내기
"장 대표 整地작업" 의구심
이기심이 보수 정체성 훼손
민심 멀어지고 평가는 야박
황교안 '막장 공천' 부메랑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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