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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만나는 우리동네 문화유산] 봉화 분천 골짜기에서 만난 ‘시간의 요새’

2026-02-18 15:57

낙동강 상류 접경지의 문화가 겹겹이 스민 ‘봉화 분천리 까치구멍집’
경계의 땅에서 태어난 겹집 구조와 환기의 과학
자연에 순응하며 생존을 설계한 산간 건축의 기록

눈이 녹지 않은 마당과 돌담을 배경으로 자리한 봉화 분천리 까치구멍집 전경. 황준오기자

눈이 녹지 않은 마당과 돌담을 배경으로 자리한 봉화 분천리 까치구멍집 전경. 황준오기자

골짜기 끝은 생각보다 더 깊었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는 길을 따라 굽이굽이 들어가자,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계류와 맞닿은 작은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경북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낙동강 상류 여우천이 굽이치며 스스로 길을 내는 가장 안쪽 골짜기에 한 채의 초가가 엎드려 있다. 겉모습은 소박하지만, 이 집은 19세기 말 산간 주민들이 혹한과 맹수를 견디기 위해 빚어낸 생활의 요새(要塞)다. 이름하여 '분천리 까치구멍집'.


분천 골짜기의 옛집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한 발 안으로 들여놓는 순간, 이 집이 단순한 민가가 아니라 혹독한 자연을 상대로 축적된 전략의 집합체임을 알게 된다. 방이 앞뒤로 겹쳐 배치된 구조는 차가운 바람이 한 번에 스며들지 못하도록 완충 지대를 만든다. 바깥 공기가 내부 깊숙이 파고들기까지 여러 겹의 공간을 통과해야 하는 셈이다. 겨울을 이겨내기 위한 설계는 단정하면서도 집요하다.


이 집이 자리한 곳은 행정의 경계선과 가깝다. 오랜 세월 사람과 물자가 오가며 서로의 삶을 섞어낸 지역이다. 그래서일까. 건물 곳곳에서는 이웃 지역의 건축 어법이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외양간의 처리 방식, 방의 배치, 작은 온돌방의 위치까지 각기 다른 전통이 한 몸처럼 얽혀 있다. 경계는 갈라놓기보다 섞어놓는다는 사실을, 이 집은 말없이 증명한다.


마루에 서면 시야가 낮아진다. 천장은 몸을 낮추게 하고, 서까래는 겹겹이 포개져 있다. 중앙의 흙바닥 공간은 집안 공기의 흐름을 조율하는 축이다. 불을 지피면 열은 안방을 데우고, 남은 기운은 다른 방으로 번진다. 가장 안쪽 작은 방은 유난히 아늑하다. 혹한 속에서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배려가 공간 배치 속에 스며 있다.


지붕 끝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틈이 있다. 그 틈은 연기가 빠져나가고 빛이 스며드는 통로다. 바깥에서는 단지 장식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집 전체의 호흡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환기와 채광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 기계가 없던 시대, 자연의 순환을 이해한 사람들의 통찰이 지붕 위에 남아 있다.


이엉으로 복원된 분천리 까치구멍집 초가지붕 상부 모습. 황준오기자

이엉으로 복원된 분천리 까치구멍집 초가지붕 상부 모습. 황준오기자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까치구멍집 내부 더그매 공간과 합각부의 환기구 모습. 황준오기자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까치구멍집 내부 더그매 공간과 합각부의 환기구 모습. 황준오기자

지붕과 방 사이에는 또 하나의 숨은 공간이 존재한다. 천장 위 빈 여백은 여름에는 열을 막고 겨울에는 온기를 붙잡는다. 동시에 생활 도구를 올려두는 창고로 활용되었다. 한정된 면적 안에서 기능을 겹쳐 쓰는 지혜는 산촌의 조건이 만들어낸 결과다. 부족함은 오히려 창의성을 자극했다.


이 집은 한때 현대식 자재로 덮이며 원형을 잃을 뻔했다. 그러나 다시 초가의 모습을 되찾았다. 복원은 과거를 향한 향수가 아니라, 이곳의 생활사를 다음 세대에 건네기 위한 선택이었다. 마당 가장자리의 돌담과 소박한 화장실까지, 삶의 흔적은 가능한 한 온전히 남겨졌다.


현대의 주택은 단열재와 기계 장치로 기후를 제어한다. 반면 이 산골의 집은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균형을 잡았다. 바람이 오르는 방향, 연기가 흐르는 길, 눈의 하중을 견딜 지붕의 각도까지 모든 것이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기술은 소박했지만 계산은 치밀했다.


골짜기에는 여전히 찬 기운이 맴돈다. 그러나 초가 안은 이상하리만큼 포근하다. 오래전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이 서까래 사이에 남아 있는 듯하다. 건축은 단지 형태가 아니라 삶의 태도라는 사실을, 이 집은 조용히 일깨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낡은 건물이 아니라 그 안에 축적된 사유와 절제다. 자연과 맞서는 대신 자연을 읽어낸 방식, 불리한 조건을 생활의 기술로 전환한 힘. 분천 골짜기의 작은 집은 오늘도 그 질문을 던진다. 편리함이 모든 가치를 대신할 수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여전히 배워야 할 지혜를 이곳에 남겨두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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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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