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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 존중이란 이름의 모르타르

2026-02-19 06:00
지중배 지휘자

지중배 지휘자

기억이 가물가물했던, 대학생 때 봤던 영화를 다시 보았다. 2001년도에 개봉한 '라스트 캐슬'을 보며, 우리가 살아가며 지어야 할 진정한 울타리, '성(城)'의 의미가 뭔지 다시금 생각하였다. 교도소에 수감된 군인들이 무너진 옛 성벽의 돌을 다시 쌓아 올리는 행위는 단순한 노역이 아니었다. 주인공 유진 어윈(로버트 레드퍼드 분)과 그의 고요한 리더십에 어느덧 동화되어 따르는 그들에게는 그 성벽은 굴복의 징표가 아니라, 짓밟힌 군인으로서의 '존엄'을 되찾는 의식이었다. 그들이 옮긴 무거운 바윗덩이는 곧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스스로의 가치였다.


독일에서 살면서 연주여행을 하며 수많은 '성(城)'들을 만났다. 돌덩이로 된 수많은 성들은 저마다의 서사를 품고 있다. 그중 산 중턱에 백조처럼 앉아 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Schloss Neuschwanstein)은 기묘한 감각을 불러 일으킨다. 영화의 군인 죄수들이 옮긴 돌 하나하나가 짓밟힌 명예를 되찾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면, 바이에른의 왕 루트비히 2세에게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무너져 가는 현실의 권력 대신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존엄, 즉 예술적 존엄을 박제해 두기 위한 최후의 보루였다. '건축은 얼어붙은 음악'이라 했던 괴테의 말처럼, 왕은 바그너의 보이지 않는 선율을 돌로 쌓아 올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예술의 존엄을 실체화 하려 했다. 그 고독한 집착은 비록 광기라 불렸을지언정, 오늘날 우리에게 거대한 예술적 유산으로 남아 시간을 초월한 울림을 전해준다. 하지만 존엄을 지키기 위해 때론 성벽이 필요할지라도, 그 울림은 결국 성벽 너머의 타인과 맞닿아야 한다. 음악가로서 내가 꿈꾸는 세상 역시 단단한 돌벽보다는 모두의 소리가 섞이는 열린 공간에 가깝다. 나는 그 열린 공간에 깃든 해답을 베를린 필하모니 홀의 무대 한가운데 서서 발견했다. 수년간 객석에서 동경하며 바라보던 풍경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 건축가 한스 샤로운(Bernhard Hans Henry Scharoun)이 음악을 중심에 두기 위해 설계한 이 공간은 무대를 사방에서 포도밭처럼 감싸 안는 빈야드(Vineyard) 스타일이다. 무대 위에 서면 사방으로 층층이 쌓인 관객의 시선과 호흡이 숲의 바람처럼 밀려온다. 나의 손이 내려왔을 때 정적을 깨고 터진 첫 음은 관객의 숨소리와 뒤섞여 거대한 파동으로 돌아왔다. 그 울림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유진 어윈이 보여 준 것처럼, 리더는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그저 함께 호흡하는 자라는 사실을. 그곳엔 성벽도 계급도 없었다. 오직 존엄을 담은 소리들의 어우러짐뿐이다. 우리 모두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이 바로 설 때 오케스트라라는 건축물은 비로소 음악이 된다. 영화 속 군인들이 자발적으로 돌을 옮긴 것도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존엄과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더 나은 세상 역시 화려한 외벽을 자랑하는 성이 아니라, 구성원 각자가 무대 중심의 주인공이 되어 자신만의 '첫 음'을 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유진 어윈이 쌓았던 성벽이 그러했듯, 세상이라는 거대한 성벽을 쌓는 일은 결국 상대방의 존엄을 내 것만큼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오늘 우리가 쌓는 돌 한 장에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라는 모르타르, 온기가 오롯이 담겨 있는지 그 소리 없는 울림에 귀를 기울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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