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의공 엄흥도의 위엄을 담은 영정이 17대 종손 엄종섭 씨에 의해 보존되고 있다. <강남진 기자>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관객들의 관심을 모으면서, 역사 속 '충절'의 의미가 다시 질문되고 있다. 스크린 속 인물의 선택과 갈등은 고려 말 격변기를 살았던 한 충신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그 주인공이 바로 시호 충의공으로 전해지는 엄흥도다.
경북 문경시 산양면 위만리. 500여 년 세월을 이어온 영월엄씨 집성촌의 중심에는 마을의 정신을 붙잡아 두는 공간이 있다. 충절사(忠節祠)와 상의재(尚義齋)다. 기자가 현장을 찾았을 때, 사당과 강당은 화려함보다 절제된 품격으로 집성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곳은 영월엄씨 중시조이자 고려 말 충신인 엄흥도의 절의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우(祠宇)다.
충의의 상징인 충의공 엄흥도 사당이 고즈넉한 자태를 보이고 있다. <강남진 기자>
◆사당의 중심, 충절사
충절사는 엄흥도의 위패를 모신 핵심 공간이다. 전통 목조건축 양식의 사당은 간결한 구조와 단정한 단청이 특징이다. 마당 한편에는 그의 충절을 기록한 신도비가 세워져 있어, 방문객들이 인물의 행적을 자연스럽게 살필 수 있다.
엄흥도는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이 영월에서 생을 마친 뒤, 위험을 무릅쓰고 시신을 수습해 장사를 치른 인물로 전해진다. 권력의 감시가 극심했던 시기, 그는 끝내 의리를 택했다. 충절사는 바로 그 결단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세워진 사당이다.
문헌에 따르면 단종 서거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른 17세기 중반, 조정에서 엄흥도의 충절을 재평가하는 논의가 이뤄졌고, 후손과 지역 유림의 뜻이 모여 사우 건립으로 이어졌다. 이후 왕실의 추증과 함께 제향 체계가 갖춰졌으며, 영조 대에는 종2품 가선대부로 추증되고 왕이 직접 제문을 내려 제향을 명한 기록도 전한다. 충절사는 가문을 넘어 국가 차원의 충절 인식이 반영된 공간이다.
◆상의재, '의(義)를 숭상하다'
충절사 옆에 자리한 상의재는 1756년(영조 32)에 건립된 강당이다. '의로움을 숭상한다'는 뜻처럼, 제향 준비 공간이자 후손과 지역 유림이 모여 선조의 삶을 되새기고 올바른 처신을 논하던 장소였다. 앞서 1751년(영조 26)에는 별묘가 먼저 세워지며 사우의 틀이 갖춰졌고, 충절사와 상의재가 함께 조성되며 현재의 형태가 완성됐다.
근대에 들어 한때 제향이 중단되기도 했으나, 1971년 지역 주민과 후손들의 노력으로 사우가 복원·정비되며 다시 향사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충절사·상의재는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세월을 넘어 이어지는 충의의 숨결, 상의재. <강남진 기자>
◆"마을 전체가 곧 집안"…17대 종손의 이야기
충절사 앞마당에서 만난 중시조 엄흥도의 17대 종손 엄종섭(81) 씨는 위만리를 "마을 전체가 곧 집안인 곳"이라고 표현했다. "우리 마을은 500년 넘게 이어진 집성촌입니다. 어릴 적부터 어른들께 들은 이야기는 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였지요." 엄종섭은 충절을 '극적인 희생'으로만 보지 않았다. "충절은 목숨을 바치는 순간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가족과 이웃, 마을을 지키며 부끄럽지 않게 사는 삶 자체가 선조들이 물려준 충절입니다."
그는 최근 주목받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언급하며 문화유산의 현재적 의미도 짚었다. "영화 속 충성과 갈등의 이야기가 우리 선조들의 삶과 겹쳐 보인다"며 "문화유산과 영화가 만나 젊은 세대가 충절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생각해볼 수 있다면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충절사와 상의재는 과거를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다. 제향이 이어지고, 마을 사람들이 오가며 기억을 공유하는 현재진행형의 장소다. 문경 산양면 위만리에서 충절은 돌과 나무에만 새겨진 개념이 아니라, 500년 집성촌의 일상 속에서 지금도 이어지는 삶의 태도였다.
강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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