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도 주구산 덕사. 현재의 덕사가 세워진 것은 조선 선조 9년인 1576년 청도군수 황응규에 의해서라 한다. 그는 주구산의 산세가 '개가 달리는 형상'이라 고을의 지기(地氣)가 빠져나간다고 여겼고, 개의 질주를 막기 위해 절을 짓고 '떡절'이라 했다. 영산보전이 주 전각이며 명부전과 삼성각, 삼층석탑, 범종루, 요사 등이 있다.
북쪽의 다로천과 남쪽의 범곡천이 청도천과 하나 되는 자리에 경부선 철교가 놓여 있다. 철교와 나란히 징검다리와 잠수교가 청도천을 건넌다. 물 건너에는 아담한 산이 호기심 많은 강아지처럼 옹그리고 있는데, 원래는 '달리는 개 모양의 산'이라 주구산(走狗山)이라 부른다. 부산행 기차가 교각 사이로 재빨리 달아나더니 가뭇없이 사라진다. 주구산이 기차를 쫓는 상상을 했다. 산은 미동도 없었다. 주구산이 꼼짝도 않는 것은, 사실은 산 중턱에 떡하니 앉은 덕사 덕분이다.
다로천과 범곡천이 청도천과 하나 되는 자리에 경부선 철교가 놓여 있다. 천 건너 옹그린 산이 주구산, 왼편의 파란 다리는 파랑새다리다.
징검다리 건너 데크 길 따라 주구산을 오르다보면 '광복 50년 쇠말뚝 뽑은 곳'이라 새겨진 오석이 있다. 김영삼 정부 때의 것이라 한다.
◆ 주구산
청도천을 건너 데크 길 따라 주구산을 오른다. 아카시나무, 팽나무를 지나 한 굽이를 돌면 동쪽으로 철길 너머 다로천이 청도천으로 합류하고 중앙고속도로 청도 톨게이트와 밀양, 경주 등지로 갈라지는 길들이 한눈에 내다보인다. 작은 산이지만 위치가 절묘하다. 청도는 옛 삼한시대에 '이서국(伊西國)'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학계에서는 고대 이서국의 전초 기지였던 성이 이 주구산에 있었다고 추정한다. 주구산성 또는 이서산성이라 불리며 옛 문헌에는 폐성(吠城)이라 기록되어 있다. '개가 짖는 성'이다. 이곳에서 이서국은 신라군과 마지막 전투를 벌여 패했고, 신라를 침공한 견훤의 군대가 웅거했으며, 고려의 왕건이 신라의 잔존세력을 멸했다고 전한다.
데크 길 옆 비탈진 산자락에 '광복 50년 쇠말뚝 뽑은 곳'이라 새겨진 오석이 서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한반도의 정기를 단절하기 위해 쇠말뚝이나 나무 말뚝을 전국 각지에 박았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수백 개의 말뚝을 뽑았다는 뉴스도 어릴 적 본 듯한데 바로 그 자리를 목도하기는 처음이다. 수목의 줄기 사이로 청도천 너머 청도읍이 마주 보인다. 남산 낙대폭포에서 시작된 범곡천 물골이 청도천으로 미끄러지는 장면도 본다. 주구산은 확실히 절묘하다. 한 소년이 바람처럼 가볍고 경쾌하게 지나쳐 달린다. 수천 년 동안 시작도 보고 끝도 겪었던 주구산이 저처럼 엽렵한 소년의 시대도 누리고 있으니 한결 가뿐하다. 조금 더 오르니 하늘아래 포강포강 쌓인 기왓장들이 보이고, 조금 더 오르니 삼층석탑과 흔들의자가 보이고, 조금 더 오르니 종루의 지붕이 드러난다. 덕사다.
덕사 앞마당에 서면 청도읍 시가지와 경부선 철도, 밀양, 경주 등지로 갈라지는 길들이 한눈에 내다보인다.
◆ 달리는 개에게 떡을 물리다, 주구산 덕사
앞마당이 아주 넓고, 정면 세 칸의 범종루가 절집의 입구로 서 있다. 서편 담벼락 앞에 그리 오래지 않은 세 기의 비석이 서 있는데 대개 덕사의 중건과 중창을 기념하는 것들이다. 절의 창건은 신라 말 혹은 고려 초라고 전해질 뿐 자세한 기록은 없고, 현재의 덕사가 세워진 것은 조선 선조 9년인 1576년 청도군수 황응규에 의해서라 한다. 그는 주구산의 산세가 '개가 달리는 형상'이라 고을의 지기(地氣)가 빠져나간다고 여겼다. 개의 질주를 막기 위해 그는 절을 짓고 '떡절'이라 했다. 개가 떡을 먹느라 달리지 못하게 하려는 뜻이었다. '떡절'은 한자로 '병사(餠寺)'라 표기하였다가 후에 음이 비슷한 '덕사(德寺)'가 되었다. 이후 순조 16년인 1816년에 장옥대사가 중창했고 1970년대와 1980년에 중수하여 사세를 유지해 오다가 2006년에 새로이 법당을 지어 현재에 이른다. 청도 사람들은 지금도 '떡절'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다고 한다. 떡절, 이라고 부르고 나니 괜히 굴풋하다.
범종루 누하를 통과해 푸른 인조 잔디가 깔려 있는 안뜰에 오른다. 최근의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 너머 영산보전이 주 전각으로 자리하고 그의 앞 왼편에 명부전이, 그의 뒤 오른편으로 삼성각이 고개 내민다. 그 외에 종무소인 적묵당과 요사채인 심검당이 있다. 영산보전과 명부전에 봉안된 불상과 나한상 등은 1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경내를 거닐어 자못 벅적한 기운이 소리 없이 그득한데, 소년의 가족으로 보이는 십 수 명이 일제히 명부전으로 물러나자 일순간 세상이 숙엄해진다. 가만 안뜰을 가로질러 범종루에 오른다. 법고나 운판, 목어는 없다. 테이블과 의자와 온갖 물건들로 어지러운 누마루 한 가운데 범종이 고요히 매달려 있다. 종이 울리면, 대포산, 은왕봉, 남산이 눈을 번쩍 뜰 것만 같다.
덕사 뒤편 주구산 능선에 '덕절산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느티나무 숲길, 왕벚나무 숲길, 배드민턴장, 놀이터, 원두막, 파고라, 전망 데크, 운동기구 등이 마련되어 있다.
생태공원의 입구와 청도천변을 잇는 데크로드. 위태롭고 가파르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남녀노소 누구나 오르내리기 편하게 완만하다.
인도교인 '파랑새 다리'와 시계탑. 다리 앞에 덕사 이정표가 있다. 봄이 되면 파랑새다리 주변은 온통 유채꽃 밭이 된다.
◆ 덕절산 자연생태공원
덕사 뒤편에 소나무 숲이 근사하다. 누군가 방금 고수레를 했는지 생채기 하나 없는 푸른 포도알이 소나무 아래 누워 있다. 솔숲 너머는 아름다운 참나무 숲이다. 숲의 가장자리를 따라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느티나무 숲길이 있고, 왕벚나무 숲길도 있고, 배드민턴장, 어린이 놀이터, 원두막, 파고라, 전망 데크, 운동기구 등이 마련되어 있다. 산책중인 사람들이 상당하다. 음악소리가 다가왔다가 멀어지고 서로서로 나누는 인사말도 쉬이 듣는다. 매화나무, 은사시나무, 철쭉, 조팝나무, 박태기나무, 영산홍, 수수꽃다리, 화살나무, 조릿대, 살구나무, 청단풍 등, 나무의 가슴에 걸린 명패는 더 없이 반갑다. 사각거리는 바람이 풀 먹인 이불깃 같아 따뜻하고 단정한 냄새가 난다.
주구산은 원래 많은 이들이 찾던 곳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주구산성의 북문지로 추정되는 터가 발견되었고 4세기경에서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토기 조각과 와편들이 다수 채집되었다고 한다. 1990년대까지 예비군훈련장으로 사용되었다가 2013년에 '덕절산생태공원'으로 조성했다. 표지석이 놓여 있는 생태공원의 입구는 덕사의 서편 모서리 즈음이다. 그곳에 청도천변으로 내려가는 데크로드가 있다. 급경사의 절벽에 지그재그 모양으로 만들어진 데크로드는 멀리서 보면 위태롭고 가파르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남녀노소 누구나 오르내리기 편하게 완만하다. 밤이면 조명이 켜지는데 그 모습이 꼭 크리스마스트리 같단다. 산벚나무와 곰솔을 지나 몇 굽이를 돌고 돌아 내려오면 인도교인 파란 '파랑새 다리'가 청도천을 건넌다. 봄이 되면 파랑새다리 주변은 온통 유채꽃 밭이 된다고 한다. 다리 끝에 생뚱맞게도 예쁜 시계탑이 기다리며 서 있다. 한 여인이 어제 약속이나 한 듯 팔랑팔랑 그에게로 간다.
글·사진=류혜숙 전문기자 archigoom@yeongnam.com
여행정보
대구부산고속도로 청도IC에서 내리거나, 청도소싸움경기장 방면 25번 국도를 타고 청도로 들어왔다면 모강교차로에서 우회전, 대남교차로에서 좌회전해 청도군청 방향 청화로를 타고 가다 청도군보건소 앞 한내길을 따라가면 청도천 잠수교 앞이다. 파동과 가창, 팔조령 터널로 이어지는 30번 국도를 탔다면 샛별교차로에서 좌회전, 유등지 지나 서상교차로에서 좌회전해 청도군청 방향 청화로를 타고 가면 된다. 덕사 바로 입구까지 차를 타고 오를 수 있지만 임도는 좁고 데크길이 잘 되어 있어 대부분 천변에 주차한다. 그러나 현재 천변 주차장은 도로공사용 콘크리트 거더가 차지하고 있어 이용할 수 없으니 적당한 자리를 찾아야 한다. 잠수교 건너 주구산 아래에도 작은 주차 공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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