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강구’ 이야기를 자주해 ‘강구 할머니’란 별명이 붙었던 환자가 있었다. 검사 결과 할머니를 괴롭히던 코피의 원인은 불행하게도 콧속의 암이었다. 이미 암이 넓게 퍼져 수술은 불가능했다. 가족은 항암치료가 힘들 정도로 쇠약해진 할머니를 고향의 한 요양병원으로 모시기를 원했다.
몇 주가 지난 뒤 할머니가 옮겨간 그 병원에 잠시 들렀다. 규모는 작았지만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깨끗한 병원이었다. 할머니는 대구에 있을 때보다 피부도 좋아 보였다. 병을 낫게 해드리지 못한 ‘못난의사’와의 재회였지만 반갑다는 듯 살짝 웃었다. 그리고 한 달이 흘렀을까. 할머니가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는 아들의 다급한 전화가 밤에 걸려왔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며칠 전 신문에서 ‘임종 직전 1년 진료비 1000만원’이라는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무슨 돈이 이렇게 많이 들어’라는 생각으로 기사를 읽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분석한 2008년 자료였는데, 임종에 가까워질수록 의료비가 급등한다는 것이었다. 의심병이 있는 필자는 ‘심평원이 왜 갑자기 이런 발표를 하지’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리고 ‘혹시 암환자 급여를 줄여 악화된 건강 보험 재정을 해결하려는 게 아닐까’라는 의심도 들었다. 다른 보고서를 찾아본 결과, 이번 심평원의 분석은 되짚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종 1개월 전 항암제 처방 비율이 미국은 9%인 데 비해 한국은 30%를 넘는다는 보고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행위별 수가제라는 국내의료 제도적 문제와 마지막까지 치료를 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고 생각하는 국내 문화가 빚은 합작품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속내야 어떻든 정부에서 말기 암 환자의 완화치료에 필요한 전문 기관을 확대하기로 한 점은 환영할 일이다. 완화치료란 적극적인 병원치료로 호전이 어려운 생애 말기 환자가 요양기관이나 호스피스 시설에서 통증완화를 통해 편안한 임종을 맞게 돕는 것을 말한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는 2010년, 세계 40개국의 임종 환자를 대상으로 죽음의 질을 평가했다. 한국은 32위를 기록했는데, 우리의 의료 수준에 비해 부끄러운 순위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도 죽음의 질을 높일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병원에서는 환자와 의사가 머리를 맞대고 잘 죽는 죽음에 대한 솔직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임종 시 자신이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되면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사전의료 의향서에 서명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자신의 죽음을 미리 만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죽음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소중한 우리 삶의 마지막 모습이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환하게 웃어주시던 강구 할머니 얼굴이 그립다.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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