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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은의 병원 에세이] 건강 불평등

2012-05-22
[김동은의 병원 에세이] 건강 불평등

코피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은 건 자정쯤이었다. 5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환자는 피를 많이 흘려서인지 창백해 보였다. 곧바로 응급 처치를 시행했고, 다행히 코피는 멎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환자가 치료비를 낼 형편이 못 된다는 것이었다. 환자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데, 지난 몇 주일 건강이 나빠 일을 못나갔다고 했다. 내심 다음날 병원 사회 사업팀에 도움을 청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출근하니 전공의 선생이 허탈한 표정으로 보고를 했다. 환자가 새벽에 스스로 링거 줄을 빼고 응급실에서 사라졌다는 것.

병원마다 병원비를 못 내고 사라진 환자를 기록한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경기가 안 좋아지면 ‘무상 급식소’ 줄도 길어지지만, 이런 딱한 환자의 리스트도 늘어난다.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부와 빈곤이 함께 늘었다. ‘부의 양극화’라는 골은 갈수록 깊어갔지만, 치료에 손을 놓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심각한 합병증인 ‘건강의 양극화’가 나타났다. 소득이 낮은 계층의 사망률은 소득이 높은 계층에 비해 2.15배나 높고, 암발생률은 67%나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한 ‘건강 불평등’의 또 하나의 요인이 있는데, 바로 의료 이용의 불평등이다. 빈곤층은 아파도 먹고 살기 바빠 병원에 갈 시간이 없다. 또 병원에서의 정기적인 건강 검진은 비용이 많이 들어 꿈 같은 이야기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 영리병원에 대한 ‘규칙 제정안’을 지난 8일 입법예고했다. 사실상 ‘영리병원’의 길을 터준 것이다. 영리병원은 말 그대로 ‘주식회사 병원’이다. 병원의 수익을 주주에게 배당해야 한다. 그들은 경제 논리에 입각한 시장의 경쟁을 통해 의료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동안의 연구 결과는 다르다. 미국의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영리병원이 의료비도 비싸고, 의료의 수준도 떨어지며, 이윤 창출을 위해 적은 인력을 배치함으로써 고용의 양과 질에서도 비영리 병원에 비해 못했다.

우려스러운 점은 또 있다. 영리 병원으로 시작하는 의료 민영화 드라이브의 최종 목적이 민간의료보험의 도입에 있다는 것이다. 부유층이 영리병원에서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다보면, 보험료를 많이 낸 만큼 많은 혜택을 받는 민간 의료보험의 필요성이 제기될 것이다. 부유층이 건강보험에서 민간 의료보험으로 말을 갈아탄다면, 지금도 열악한 보험 재정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되면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하기 힘든 가난한 이들의 건강은 더 궁지로 내몰리게 되고, ‘건강 불평등’은 고착화 단계로 접어들 것이다.

‘의료’는 ‘주주’가 아니라 ‘환자’를 위한 것이다. ‘모든 불평등 가운데 건강 불평등이 가장 비인간적이다.’ 오늘따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이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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