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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또는 수십 년간 간직한 물건, 아끼던 책들, 손때 묻은 옷가지들, 얇아진 냄비들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은 물건에 대한 살뜰한 나의 정 때문인가? 모으기는 쉬워도 버리기는 정말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하는 요즘이다.
젊었을 때부터 나의 재산 목록 1호는 책이었다. 특히 좋은 책이라고 신문에 소개되면 어김없이 사들이는 버릇이 있었다. 어느 땐가 시간이 날 때 꼭 읽으리라는 다짐을 거듭하면서.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을 때도 월부로 책을 사들여 남편의 타박을 듣곤 했다. 더군다나 늦깎이 공부를 하면서 사들인 책, 이것저것 관심분야를 바꾸면서 사들인 관련서적,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필요한 책, 아동문학 서적 등 여러 종류의 책을 집안에 쌓아두었으니….
그렇다고 변변한 서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온통 책들이 제자리를 잡지 못해 뒤죽박죽이 돼 있었다. 언젠가 서재를 마련해서 천장을 향해 쌓인 책들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호사를 누려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하지만 대가족 속에서 살아온 터라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 그저 나의 서재는 부엌 식탁이고, 거실이고, 큰방이었다. 그곳에 서거나 앉아서 책을 읽고 그곳에 쌓아 두곤 했다.
그래서 남편과 약속한 것이 새집으로 이사갈 때는 꼭 필요한 책들만 가져가자는 것이었다. 책뿐만 아니라 필요 없는 구질구질한 살림살이나 물건도 다 버리고 가자 했다. 하지만 내버렸다가 다시 거둬들인 책이며, 자질구레한 가재도구를 보면 남편과의 약속은 결국 지키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퇴직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맞아 나는 여기저기 쌓인 책들과 좋은 물건은 아니어도 눈에 익어 편안한 물건들과 이별을 준비해야만 했다. 그것에 묻어있는 특별한 추억과 의미 또한 망각 속으로 흘러갈 것이다. 집 안의 모든 책을 버릴 것과 간직할 것으로 분류해서 마루에다 늘어놓았다. 그런데 버려야 할 책 쪽에 자꾸만 눈이 간다. 나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간에 갑작스러운 이별을 두려워한다.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란 시구처럼 모든 것에 대한 살뜰한 정이 유별해서임을 어쩌랴.
그러나 세상에 버리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다정했던 사람도 미워했던 사람도 끝내는 떠나는 것을. 이제 육십을 넘은 나이에 무엇을 못 버리겠는가. 버려야 할 것들이 어찌 눈에 보이는 것뿐이랴만은 버리면 비로소 넉넉해질 수 있다는 진리를 나도 한 번 체험해 보리라.
이재순<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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