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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만인도를 그리며

2014-04-21
[문화산책] 만인도를 그리며

민들레가 지천으로 피는 계절이다. 동그란 얼굴로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누구에게나 방긋 웃는다. 보기엔 아주 연약해 보이지만 뿌리는 강하다. 어디든 틈만 있으면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운다. 사람이 밟고 다니는 보도블록 사이에서도 피어나 지나가는 사람을 쳐다보고 웃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밟혀도 꿋꿋하게 버티며 꽃을 피우는 민들레를 보면 역경 속에서 살다간 우장춘 박사가 생각난다. 그는 1898년 조선말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가담했던 우범선과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찍이 살해되고 일본에서도 조선인이란 이유로 멸시받으며 자랐다. 이러한 비운의 운명을 지닌 우 박사는 그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인고의 세월을 딛고 육종학자로 성장하여 현해탄을 건너왔다. 조국에 뼈를 묻겠다며 돌아온 후에 종자개발 연구에 몰두해 육종학 분야에서 빛나는 업적을 남겼으며 그의 역저 ‘종의 합성’은 세계 육종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가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길가에 핀 민들레를 보아라. 오가는 발길에 밟히면서도 꽃을 피운다. 낙심하지 말고 민들레처럼 어려움을 극복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일러준 그의 어머니의 당부가 한몫했다.

누구에게나 삶에서 힘든 시기를 맞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우 박사가 어머니의 간곡한 당부에 힘을 얻은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 친구, 가족의 작은 위로와 격려 한마디가 수렁에 빠진 사람에게 큰 힘이 될 수 있고, 때론 삶의 동기를 갖게도 한다. 얼마 전, 지난날 모셨던 교장선생님께서 만인도(萬忍圖)를 선물하셨다. 만인도란 ‘참을 인(忍)자’를 만 번 그린 책이다. 퇴직을 하고 나면 참을 忍 자를 그리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고, 그럴 때마다 정성스럽게 그려보라는 주문이시다. 忍 자를 살펴보면 마음 心 위에 칼 刀 자가 있으니,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분노, 미움, 아픔, 외로움, 욕심, 억울함 등을 마음속 칼로 지그시 눌러버리라는 의미가 있다. 평소 존경하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이기도 하려니와 이런저런 일도 있어, 나는 요즘 만인도에 忍 자를 그려넣고 있다. 아직도 어른스럽지 못한 마음 구석구석에 忍 자가 들어앉으면서 어수선했던 마음은 어느새 맑고 고요해진다. 언젠가 나의 만인도가 완성되는 날, 아마도 지금보다는 훨씬 성숙한 어른이 되어 짓밟히면서도 피어나는 한 포기 민들레처럼 환하게 웃을 수 있으리라.

이재순<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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