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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그리운 이름, H

2014-05-23
[문화산책] 그리운 이름, H

헤리 트루먼을 모르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부통령이었다가 루스벨트가 병사한 후 대통령을 승계했고, 1945년에는 일본에 원자폭탄 투하를 결정해 유명세를 치렀다. 6·25전쟁 때 한국파병을 감행함으로써 한국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나는 이처럼 유명세를 치른 정치인 트루먼보다 인간 트루먼에게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다섯 살 때 교회에서 만난 동갑내기 여자아이와 사랑을 했고, 이후 그녀와 결혼에까지 골인함으로써 평생 지고지순한 사랑을 펼쳤다.

일생 동안 한 여자만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트루먼의 사랑은 잔잔한 떨림을 준다.

트루먼은 언젠가 회고록에서 “아내를 만나던 날 어머니나 누나에게 느끼지 못한 끌림을 느꼈으며,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이성에 대한 끌림은 인간 본능이 아니겠느냐”며 반문했다. 트루먼만큼 진솔한 것은 아니지만, 내게도 잊히지 않는 첫사랑(?)이 있었다.

나는 성주군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 1945년,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난생 처음 ‘학교’라는 곳을 가게 됐다.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몰라 쩔쩔매다가 교무실 앞 화단에 오줌을 싸고 말았다. 그때 누군가 성난 목소리로 “고라 바카야로, 기타나이 상가”(이 바보야, 불결하잖아)라고 소리치며, 큰 손바닥으로 나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나를 구타한 사람은 일본인 교장 이토 가쿠에시였다. 나는 창피한 것은 물론 교장에 대한 적개심으로 교장에게 달려가 “왜 때리노?”라고 소리치며 왼쪽 팔목을 죽어라고 물어버렸다. 이 사건으로 나는 학교에서 일약 스타가 되었다.

수치심과 모욕감으로 벌벌 떨고 있던 나를 알뜰살뜰 챙겨준 소녀가 바로 H였다. H는 전교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내 옷을 챙겨주고, 우물가로 데려가 깨끗이 씻겨주었다.

뒤에 알고 보니 H도 입학하러 온 학생이었고, 나와 동갑인 여덟 살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트루먼 부부처럼 특별한 감정을 나누며 지냈지만, 안타깝게도 6·25전쟁으로 영원히 헤어지고 말았다.

봄날이 간다. 떠나는 5월을 보면서 문득 첫사랑 H가 떠오른다.

지나간 사랑도, 기억도, 봄날처럼 부질없이 떠나는 것, 그래서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배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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