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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밥상 위에 젓가락이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중략), 학교길에 동무들이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어릴적 한 번쯤 불러보고 들어 봤음직한 동요 ‘나란히’ 중 한 대목이다. 요즘 우리 아이들의 하루 생활은 말 그대로 ‘나란히’ 그 자체이다. 학교에서 학원 그리고 집으로 이어지는 일명 ‘나란히’ 교육이 그것인데, 이렇게 돌아가는 시스템에서 조금이라도 엇박자가 나면 아이 또는 부모 둘 중 하나는 마음의 중상(重傷)을 입는다.
부모 세대로 잠깐 거슬러 올라가보자.(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의 세대를 말함) 국민학교 시절, 조례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모두들 운동장으로 나와 선생님의 ‘앞으로~ 나란히!’라는 구령소리에 줄을 맞췄다. 따라서 중학교로 올라가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 모든 것은 자동화가 된다. 앞사람의 그 앞에 있는 이의 뒤통수가 보이면 재빠른 걸음으로 앞사람 뒤통수만 보이도록 줄을 맞춘다. 기나긴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면 다시 나란히 한 줄로 교실로 들어와서 제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쉬는 시간에 행여나 앞뒤 책상 줄이 삐뚤어져 있지나 않을까 줄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런 훈련 덕에 과연 무엇을 얻었을까? 질서를 아주 잘 지키는 일등(?)국민이 되었을까?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이 할 일이라면, 우리 학교와 교육은 너무나 친절하게도, 아주 쉽게 그 자리를 안내해줬다. 앞사람 뒤통수만 보이는 그 자리가 내 자리인 것이다.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 하면 다른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는 무조건 가만히 앉아서 내 자리를 지켜야만 한다.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우리 아이들은 언젠가부터 기름칠만 하면 잘 돌아가는 톱니바퀴가 되어 있다. 한 치의 유격이 용납되지 않는 그런 톱니바퀴….
이렇게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우리는 지금 낭떠러지 앞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정작 앞사람의 얼굴은 한 번도 보질 못했고 그의 뒤통수만 보고 달려 왔으니…. 앞사람이 앞을 못 보는 장님인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 이제 와서 낭떠러지에 떨어져 있는 그를 탓하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이제는 우리가 이 길이 제대로 된 길인지 살피고 그 눈을 떠야 할 때가 아닐까? 진정한 교육은 우리 아이들에게 그 눈을 뜨도록 도와주는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허 문 호 <대구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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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나란히 나란히](https://www.yeongnam.com/mnt/file/201406/20140624.01024082200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