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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 철 <수필가> |
나는 친한 친구가 별로 없다. 그러나 유독 한 사람, 친형제보다 가까운 친구가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필자의 옆 집에 살았으며, 우리는 죽자 살자 하고 절친하게 지냈다. 학교갈 때도 같이 갔으며, 수업을 마치면 함께 집으로 갔다. 그가 나를 얼마나 끔찍히 좋아했던지 한 살 아래인 나에게 꼭 형이라고 했다. 우리는 군대에 갈 때도 동갑은 아니지만 같은 날 입대했고, 제대도 함께 했다.
그 시절 우리에게는 ‘문학’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둘다 문학을 끔찍히도 좋아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문학에 취미는 있었지만, 글을 쓰는 소질은 없었다. 그는 많은 문학 장르 중에서 유독 시를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고려 때 이조년이 지은 ‘다정가’를 특별히 좋아했다. 그는 기분만 좋으면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은 삼경인데…”를 어떤 괴인의 주술처럼 큰 소리로 읊었다.
그가 이조년의 시조를 좋아한 것은 이조년이 우리 고향 성주 출신이기도 하고, 배꽃이 만발할 때 달빛이 찬란하게 뿌려진 장면은 가히 이효석 선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달빛에 소금을 뿌린 듯’ 하던 표현보다 더 멋진 장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하얀 배꽃이 만발한 넓은 과수원에 달빛이 뿌려진 장면이란 미쳐버릴 만큼 황홀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어린시절, 배꽃이 필 무렵이 되면 우리는 꽃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곧잘 인근에 있는 고름재 과수원을 찾아갔다. 호랑이가 출몰한다는 산골길을 걸어서 배꽃의 만경창파에 달빛이 자욱히 깔린 것을 감상하려고 나란히 고름재 배밭에 가는 것이었다. 우리 둘은 환한 배꽃무리에 둘러싸여, 우리 둘은 두 손을 잡고 건드렁 건드렁 춤을 추면서 다정가를 몇 번이고 낭송한 후에 자정이 되어서야 집에 오곤했다
그토록 다정했지만,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면서 각자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서울로, 나는 대구로 나와서 살게 된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수시로 연락을 하고 지냈는데, 얼마전부터 뚝 끊어지고 말았다. 그가 말기 간암에 걸려서 먼길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제는 배꽃도 지고, 좋아하던 친구도 떠나버려 실로 허전한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오늘처럼 보름달이 유난히 밝은 밤이면 이조년의 ‘다정가’를 목청껏 외치던 그 친구가 사무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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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배꽃 피는 보름달 밤](https://www.yeongnam.com/mnt/file/201406/20140627.01023075325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