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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인<문학비평가> |
대지의 기운을 잔뜩 품은 자색이 풀어져 연둣빛 새순이 오르더니 어느새 짙푸른 초록의 세계다. 해마다 이맘때면 초록에 견주어 여린 연둣빛을 찬미하던 한 시인이 생각난다. 초록은 너무 뻔뻔하게 초록입네 하지만 연둣빛은 세상에 첫발을 내디디는 초년생처럼 수줍어하는 그 다소곳함이 좋다고. 그 후로 연둣빛을 좋아하는 그 시인의 취향만큼이나 아주 주관적인 이유로 저 초록빛을 보면 왠지 선택받지 못한 자의 억울함이 느껴진다.
미국 동화 작가 캐서린 패터슨의 ‘내가 사랑한 야곱’에 쌍둥이 자매가 나온다. 몇 분 차이로 먼저 태어난 언니 사라는 평생 동안 그 몇 분간만이 모든 사람의 관심을 온몸에 받은 유일한 시간이라고 여긴다. 나면서 숨을 쉬지 않는 동생 캐롤라인을 살리려고 모든 사람이 매달려 있는 동안 태어난 지 불과 수분밖에 되지 않은 신생아인 자신은 바구니에 혼자 내팽개쳐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온몸에 한기를 느낀다. 튼튼하고 집안형편의 어려움을 헤아릴 줄 아는 속 깊은 사라는 섬에서 게잡이를 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아버지를 도와 아들 역할을 하며 식구들의 요구를 들어준다. 반면 병약하지만 예쁘고 음악적 재능이 많았던 캐롤라인은 늘 주변인의 배려와 관심을 받으며 자라게 된다. 결국 둘 중 항상 ‘더 나은’ 쪽인 캐롤라인은 사라의 모든 것을 앗아간다. 친구들과 부모님의 사랑, 미래의 꿈까지도. 사춘기에 이르러 사라는 동생의 그늘 아래 묻히는 자신에 대해 사무치는 서러움을 느끼며 평생 단 한 번만이라도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 마침내 동생과의 비교에서 비롯된 선택받지 못한 자의 서러움에서 벗어나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찾아가게 된다.
위로받고 배려받지 못하는 속 깊은 맏이, 사라의 자리는 고군분투하는 강자의 자리이기도 하다. 성숙해간다는 것은 무조건적인 이해와 배려를 받는 캐롤라인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을 책임지고 주변을 살펴야 하는 사라의 자리로 옮겨가는 힘겹고 서러운 행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때로는 철딱서니 없이 놀아도 그냥 귀엽게 보이던 그 연둣빛 시절이 많이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정으로 내가 특별한 존재이기 위해서는 머무르고 싶은 자기의 보호막을 깨뜨리고 나와야 한다. 그러면서 나의 고유한 색으로 짙어지는 것이다. 연둣빛 연약함을 떨치고 저 칠월 한낮 폭염을 당당히 향하는 초록의 고독한 행보를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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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초록을 위하여](https://www.yeongnam.com/mnt/file/201406/20140630.01023074435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