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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진호<대경대 예체능대 학장> |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극작가 안톤 체호프와 헨릭 입센, 스트린드베리가 활동하던 19세기는 근대극이 시작된 시기였지만 연극을 선도하던 극작가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대였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를 물었는데,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하며 인간의 정신과 꿈을 해석하던 프로이드는 인간의 모순에 찬 원초적 불행에 깊이 상심해 일생을 우울하게 보냈다. 이런 인간의 절망을 뛰어넘어 보려고 니체는 초인사상을 외쳤지만 자기 자신을 학대하며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던 시기였다.
그렇지만 이들 극작가는 인간의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안톤 체호프는 ‘세 자매’ 등의 희곡과 많은 단편소설을 통해서 절망적인 여성과 동화해 여주인공의 불행을 최소화하려 했고, 헨릭 입센은 그의 희곡 ‘인형의 집’을 통해 그런 여성의 처지에 분노해 인간의 불행을 저지하려 했다. 그에 반해 스트린드베리는 희곡 ‘미스 주리’에서 인류의 가장 큰 문제인 남녀 간의 성적 갈등을 문제화해 인간의 욕망에 도전하는 무대를 보여줬다.
인간의 비극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런 극작가들의 작품을 거듭 무대에 올리게 했다. 그 후 1, 2차 세계대전을 다 겪은 희대의 천재인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피네간의 경야’와 아인슈타인의‘장 방정식’에 의해 해결책을 모색한다. 제임스 조이스는 방대한 꿈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과거를 용서하고 행복한 미래를 예언했고, 아인슈타인은 이미 멸망했거나 멸망해야 할 인류를 방정식을 통해 미래의 문을 열어줬다.
그러나 이런 놀라운 일이 있은 후, 바로 우리 윗세대까지도 무엇을 기뻐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어둠 속에서 헤매야 했다. 자신의 총을 묻고 어둠 속에서 천국의 문을 두드리라는 밥 딜런의 팝송처럼 희망적인, 그러나 너무나 슬픈 시대였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비린내 나는 부둣가엔’이라는 대중가요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사람의 심정을 대신해줬는데, 어린 시절 뭘 모르고 들었던 노래의 의미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이상국가 아틀란티스는 실제 존재했던 나라가 아니라 철학이라고 한다. 사람의 훌륭한 상태를 덕이라고 하는데, 우리 모두 덕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고, 이상국가 아틀란티스가 있을 것 같은 부둣가에 우리는 웃으려고 왔다.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부둣가에서 기적처럼 우리는 웃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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