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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이재선 가족의 런던 생활연극기] 제16막 - 스코틀랜드는 독립을 원한다

2014-09-05

스코틀랜드인에게 “Are you English?”라고 하면 정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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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글렌피넌 철도고가교. 1897년부터 1901년까지 지어졌다.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철교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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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두 번 기차가 정차하는 글렌피넌역. 작은 시골역이지만 박물관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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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영과 정호는 글렌피넌 철도고가교가 행운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으며 교각에 손을 대고 각자의 소원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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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버네스캐슬에서 바라본 도심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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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전통음식 하기스(Haggis). 양이나 송아지의 내장을 잘게 다져서 향신료로 양념하고 오트밀과 섞은 뒤 다시 원래 동물의 위에 넣고 삶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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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자동차로 여행하는 멋 중 하나가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 마음대로 멈춰서서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2014년 8월, 비온 뒤 깨끗한 아침. 도서관 앞 아담한 카페. 청소를 마친 재선이 잔잔한 음악을 틀고 모닝커피 한 잔을 내린다. 아침 햇살이 잘 드는 테이블에 앉아 신문을 펼쳐드는 순간 친한 동네 형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선다.


#1

재선 어? 출근 안 하셨습니까? 아침부터 웬일이십니까? (눈을 가늘게 뜨면서) 요새 회사 어렵다 카디 짤렸습니까?

동네형 말하는 본새하고는…. 오늘 토요일이다. (드립포트에 담긴 커피를 잔에 따르며 향을 음미한다.) 흐음, 화산토의 흙냄새가 나고 스모크향이 강하네. 초콜릿 맛은 좀 덜 나지만 신맛도 살짝 느껴지는 걸 보니 이건 과테말라 원두가 틀림없군.

재선 콜롬비아 원둔데요? 그저께 볶았는데 좀 타버려서….

동네형 (커피 잔을 거칠게 내려놓으며) 흐음, 커피 맛이 이래서야 손님이 오겠나? (재선이 읽으려던 신문을 빼앗아 펼쳐든다.) 스코틀랜드 독립투표 9월18일로 결정…. 이야, 잉글랜드하고 그렇게 사이가 안 좋더니 결국 분리가 되려나? 몇 년 전에 출장 갔을 때 잉글랜드랑 프랑스랑 A매치 축구경기 하는데 스코틀랜드 지역 사람들은 거의 다 프랑스를 응원하더라고.

재선 (신문을 다시 빼앗아 읽는다.) 오, 이번에는 심상찮은데요? 하긴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하고 차이가 좀 있더라꼬예. 전에 하일랜드의 작은 도시에 갔을 때 소영이가 영어 회화 연습한다고 거기 할아버지한테 ‘Are you English?’라고 말을 걸었더니 정색을 하면서 ‘No, I’m Scottish!’ 하더라니까요.

동네형 맞아. 그래서 ‘Are you British?’라고 묻는 게 나아. (혀를 끌끌 차며) 그래도 그렇지 애가 묻는데 적당히 예스라고 해주지. 하여튼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고지식해.

재선 거기 사투리 심하죠? 영어 발음도 완전히 못 알아듣겠던데요?

동네형 (눈을 가늘게 뜨며) 표준 영어발음은 잘 알아듣고?

재선 (어깨를 으쓱하며) 예, 뭐 영국 한 3개월 있었더니 대충은 알아듣겠던데요. 보자, 형님은 영국 며칠 있었다꼬예? 일주일? 사흘?

동네형 (마시던 커피 잔을 거칠게 내려놓으며) 에이, 커피 맛하고는…. 거기 사투리 심하대. 사실 민족 뿌리도 달라. 스코틀랜드는 독일계 켈트족이고 잉글랜드는 앵글로색슨족이지. 언어도 게일어라고 해서 꽤 많이 차이가 날 거야. 우리나라와 일본이 사이가 안 좋듯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도 역사적으로 엄청 많이 싸웠지. 윌리엄 월레스가 스코틀랜드의 독립전쟁 영웅이잖아!

재선 캬아, 형님은 우째 그런 걸 다 아십니까?

동네형 (목소리를 키우며) 커피전문점 춘추전국시대! 동네 작은 카페를 운영하더라도 역사 의식이 있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법. 재선아, 공부 좀 해라!

재선 (눈을 가늘게 뜨며) 형님, 영화 ‘브레이브 하트’ 본 게 다죠?

동네형 (멜 깁슨 흉내를 내며) 프리덤!

재선 (똑같이 흉내를 내며) 프리덤!


#2

스코틀랜드 하일랜드 지역의 중심도시인 인버네스(Inverness). 오래된 성과 석조건물 사이로 네스 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도시다. 재선가족, 인버네스의 한 레스토랑에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정호 아~ 배고파. (메뉴판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재선 이정호, 보면 뭔지 아나?

정희 ‘피시 앤 칩스(Fish & Chips)’는 정말 질린다. 다른 거 좀 먹어보자. 영어를 잘 못하는지 너거 아빠는 맨날 식당에서 ‘피시 앤 칩스’만 시키니까.

재선 에헤이, 이 사람이. 영국은 음식이 거기서 거기라니까.

소영 근데 메뉴에 사진이 없어서 어떤 음식인지 잘 모르겠어. 종업원한테 물어볼까? 뭐 추천할 음식 없냐고?

재선 영어로? 진짜로?

소영 응. 근데 물을 수는 있는데, 길게 얘기하면 아빠가 알아서 해. 할 수 있지?

정희 안돼. 너거 아빠 영어가 아주 저렴하다니까?

재선 영국 음식수준이 저렴한 거다. 그러니 ‘피시 앤 칩스’ 그냥 먹지?

소영 (재선 대답을 무시하고 종업원을 부른다) What would you like to suggest for dinner? 저녁메뉴 좀 추천해 주세요.

종업원 (메뉴판을 짚으며) Uh, You can choose what you want from a variety of TEA at our restaurant. 저희식당엔 다양한 음식이 있으니까 원하는 대로 고르시면 됩니다.

소영 (재선을 쳐다본다.)

종업원 (재선을 쳐다본다.)

재선 (정희를 쳐다본다.)

정희 내가 뭘 잘못 들었나? TEA라 그러는데? 티?

재선 그래? 익스큐즈미 미스. 노 티! 노 티!

종업원 No Tea?

재선 노 티! 아임 헝그리! 위 원트 디너!

종업원 (웃으며 외국인이 듣기 쉬운 짧은 영어로 설명한다) In Scotland, ‘Tea’ means ‘Dinner’ and ‘Dinner’ means ‘Lunch’. 스코틀랜드에서는 티가 저녁식사라는 의미고 디너는 점심을 뜻해요. Why don’t you try some Haggis? 하기스 한 번 드셔보시죠? It’s Scottish traditional food. 스코틀랜드 전통음식인데.

정희 하, 하기스? 하기스라 그러죠?

재선 하기스…는 기저귀 아이가?

정호 아버지, 배고파요. 그냥 ‘피시 앤 칩스’ 먹어요.

정희 아니야. 이때 아니면 우리가 언제 먹어 보겠어, 하기스. 오케이 하기스! 하기스 플리즈!



얼마 뒤 주문한 스코틀랜드의 전통음식 ‘하기스’가 나온다.



재선 뭐고, 이거 순대 아이가?

정희 그러게, 소시지같이 비닐에 싸여 있는 것도 같고, (냄새를 맡으며) 흠흠 냄새도… 비슷해.

소영 근데 순대보다 텁텁해. 비린내도 좀 나고. (조금 먹어보더니 포크를 내려놓는다.)

정호 (한입 잔뜩 베어 물더니 금방 울상을 짓는다.)

재선 내가 ‘피시 앤 칩스’ 먹자 그랬제?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 로카버, 글렌피넌을 잇는 ‘글렌피넌 고가교’. 21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고가교는 1897년부터 4년간 공사를 했는데 그 외형이 아름다워서 ‘해리포터’를 비롯해 수많은 영화의 촬영지가 됐다. 재선가족, 고가교를 좀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힘들게 아래로 내려간다.



정호 우와, 진짜 호그와트 급행열차가 지나가던 다리네.

정희 난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건 줄 알았는데 진짜였네.

소영 이 다리를 건너가면 꼭 마법의 세계로 갈 것만 같아.

재선 그럼 열차는 못 타지만 백년 묵은 철도다리에 소원을 한 번 빌어 볼까? 혹시 아나? 호그와트는 못 가더라도, 소원은 들어줄지?

정희 좋았어. 다리 기둥에 손을 짚고, 눈 감고 소원을 빌자. (정희를 따라 재선과 아이들도 손을 짚어 소원을 빈다.)

정호 (제일 먼저 눈을 뜨고) 누나는 뭐 빌었어?

소영 안 돼, 비밀이야. 소원을 말하면 안 이뤄져.

정호 에이, 아버지는 뭐 빌었어요?

재선 (씨익 웃으며) 끝내주는 거!

#3

다시 시간은 2014년 8월. 도서관 앞 아담한 카페에는 여전히 다른 손님은 없고 재선과 동네 형이 토스트를 나눠먹고 있다.



동네형 그래서? 겨우 이 조그만 카페 하나 열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단 말이야?

재선 이렇게 이뤄질 줄 누가 알았나요, 뭐. 그리고 소원이라기보다는 삶의 중간 목표라고 하는 게 맞겠죠. 맛있는 커피를 내리며 여유도 즐겼으면 좋겠다 싶었죠.

동네형 (눈을 가늘게 뜨며) 손님이 없어서 이렇게 여유가 많이 생길 줄은 몰랐지? 요즘은 보험약관처럼 소원도 구체적으로 빌어야 해. 입지조건에 월 매출, 순수익까지 정확히! 그나저나 나도 글렌피넌 고가교에 꼭 한 번 가봐야겠는걸? 소원 하나 빌고 오게.

재선 (눈을 가늘게 뜨며) 가면 꼭 물어봐주세요. 소원 AS 안 되는지….

문화점조직 이공컬처 대표 20cultur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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