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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아치필라의 가시

2014-09-23
20140923

노란 꽃들이 이삭 모양으로 모여 피어있다. 그 아래에는 날카로운 창처럼 생긴 잎이 빽빽이 돋아나 있고, 꽃 사이에도 작은 가시들이 삐죽삐죽 나와 있다. 이 식물은 뉴질랜드에 사는 ‘아치필라 콜렌소이’다. 뉴질랜드 출신 식물학자 존 도슨과 롭 루카스가 쓴 책 ‘식물의 본성’(지오북 2014) 표지를 넘기면 이 식물의 사진이 한 페이지를 채우고 있다. 거기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있다. “아치필라속(屬)의 가시는 멸종된 모아새에게 뜯어 먹히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이다.”

잎을 창 모양으로 만든 아치필라의 아이디어가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다. 이 책에는 더 기발한 생존전략으로 살아남은 식물도 많이 소개돼 있다. 그런데 ‘멸종된’이라는 단어 때문에 아치필라의 가시가 특별해진다. 사방팔방으로 뻗은 무기들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 적을 향한 것이었다. 오랜 시간 진화 과정을 거쳐 갖게 된 가시가 이젠 쓸모없게 돼버린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아치필라가 쓸모없는 가시들을 버리고 모아새가 좋아했던 부드러운 잎으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 있다. 물론 진화에 정해진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역방향으로 진화가 진행된다면 아치필라가 가시를 얻은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필요로 할 것 같다. 아치필라가 현재 환경에서 살아가는 데에 가시가 특히 불리한 요소로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런 아치필라의 가시는 인간사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힌다. 제대한 지 십수 년이 지난 남자들이 다시 입대하는 꿈을 꾸다 벌떡 일어난다.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합격이 취소되는 꿈을 꾸다 깨어나 가슴을 쓸어내린다. 5공 시절 평화의 댐 건설처럼 존재하지 않는 위협에 대한 공포심을 이용하는 일도 가끔 벌어진다. 불안과 공포의 원인이 사라진 뒤에도 우리는 한참 동안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심지어 죽을 때까지 떨쳐버리지 못하기도 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 중 몇몇은 벌써 멸종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허탈감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모아새는 날개가 퇴화돼 타조처럼 달리는 새였으며, 큰 종류는 키가 3m에 이르렀다고 한다. 수천만 년 동안 뉴질랜드에서 살았던 새는, 약 천 년 전 인간이 뉴질랜드에 들어온 후 15~18세기 무렵 멸종됐다. 또 저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아치필라의 가시가 건조한 바람이 부는 서식지 환경에 적응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김광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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