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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거 아부지가 하도 깝치는 바람에 화장도 못 하고 나왔다.”
어느 서울 사람이 이 말을 듣고 그 뜻을 묻는다면 나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약속 장소에 늦게 나온 어머니가 딸을 만나자마자 하는 말이었을 거라고, 출발하기 전 성마른 아버지는 현관에 서서 연신 재촉을 했고 평소 느긋한 어머니는 정신없이 허둥댔을 거라고, 아마 오는 동안 두 사람은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런데 대구의 20대에게 물어본다면 답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그는 “아빠가 엄마에게 깝쳐? 엄마가 그렇게 말해?” 하는 의문이 들고, 뭔가 어색하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깝치다’라는 사투리는 이제 대구에서도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중장년층에는 ‘재촉하다’라는 뜻이고 젊은 사람들에게는 ‘깝죽거리다’라는 뜻이다. ‘재촉하다’와 ‘깝죽거리다’라는 의미가 확연히 다른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나는 예전에 쓴 어느 칼럼에서 80년대 인기 참고서 ‘하이라이트 고교 국어’가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추정한 적이 있다. 그 책은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 나오는 ‘깝치다’를 ‘까불다의 방언’으로 풀이했었다. 그 후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이 말이 ‘까불다, 깝죽거리다’의 뜻으로 10대들에게 번져나간 것 같았다. 그 칼럼에는 사투리조차 징발당하는 변방의 서글픔과 잘못된 용법을 바로잡고 싶은 생각도 녹아 있었다.
지금도 지역불균형 문제는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고, 사투리는 점점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지만, 말에 대한 생각은 좀 달라졌다. 예전에는 객지에 나가 고생하는 자식이 그만 고향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면, 지금은 어디에서든 뿌리내려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할까. ‘깝치다’가 ‘재촉하다’의 뜻으로는 우리 세대와 함께 사라지겠지만, ‘깝죽거리다’라는 뜻으로는 더욱 번성할 것이니 마음이 편해진다.
이렇게 생각이 바뀐 것은 말이 누구의 소유물도 될 수 없음을 이제야 깨달은 덕분인지 모르겠다. 가령 ‘무말랭이’란 말에서는 아무런 맛도 촉감도 느껴지지 않지만, ‘오그락지’란 말은 오글오글한 모양과 씹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떠올리게 해 준다. 하지만 나는 ‘오그락지’를 더는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사라져가는 말들이 떠오를 때마다 그에 얽힌 기억들을 하나씩 하나씩 찬찬히 떠올릴 것이다. 가을에는 이런 방식도 괜찮은 사랑법이 될 것 같다.
김광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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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오그락지’에 대한 명상](https://www.yeongnam.com/mnt/file/201409/20140930.010220752180001i1.jpg)